[세상읽기] 조승희 전 언론인

지방자치를 풀뿌리 민주주의라 한다. 풀뿌리 민주주의는 대의 민주주의와 달리 시민운동, 주민운동 등을 통하여 주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참여 민주주의를 말한다.

이같은 참여 민주주의의 자치행정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기관이 지방의회다. 또 주민을 대리하여 일을 하는 사람들이 지방의회 의원들이다. 따라서 지방의회 의원들은 주민들의 심부름꾼이다. 주민들이 심부름을 시킬 때는 가장 성실하고 믿음직한 사람을 골라 시킨다. 또 심부름꾼은 주인의 뜻을 잘 살펴야 한다. 주인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이 잘못되어 고치려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심부름꾼으로서의 존재 가치가 없는 것이다.

바다가 없는 고을. 비록 살림은 넉넉치 않지만 주민들은 인정 많고 자연경관이 빼어나 장수하는 고을. 그래서 인근 고을에서는 이 곳을 '양반고을'이라 불렀다. 양반고을은 양지말, 윗말, 산넘이, 중머리말, 대추말, 군절, 상전리 등의 촌락으로 이루어 졌다.

양반고을도 주민자치를 실시했다. 주민들이 뽑은 촌장은 마을 구석구석을 다니며 무너진 담도 쌓고 다리도 놓았다. 주민들의 농사일도 도왔다. 때론 마을을 위해 이웃고을이나 먼 지방까지 찾아가 견문을 넓히기도 했다. 촌장은 주민들을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일을 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때론 촌장이 미덥지 못했다. 애써 쌓은 담이 다시 무너지거나 마을운영비를 제멋대로 사용하는 것 같았다. 또 주민들 보다는 자기 집안이나 가까운 친구들을 먼저 챙기는 것 같기도 했다.

이에 주민들은 주민을 대신해 촌장을 감시할 심부름꾼을 뽑았다. 심부름꾼으로 뽑힌 사람들은 주민들에게 큰 절을 하며 명예롭게 생각하고 주민들의 뜻에 따라 열심히 일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물론 품삯도 받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양반고을 심부름꾼들은 곧바로 '양반고을 감시위원회'를 결성하고 일을 시작했다. 촌장이 일을 하기 전에 미리 내용을 알아보기도 하고, 때론 현장을 직접 살피기도 했다. 또 고을 운영비는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결산감사도 했다.

그러던 어느 무더운 여름날. 감시위원들이 마을의 수호신인 느티나무 밑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이를 본 고을 어른이 "왜 일들을 안하고 낮잠을 자고 있는가"라고 꾸짖었다. 그러자 이들은 "힘이 들어서 좀 쉬고 있다"며 "이제는 품삯을 받아야 힘이 날 것 같다"고 투정을 부렸다. 결국 품삯을 주기로 했다. 세월이 지나 양반고을의 촌장과 감시위원들이 바뀌었다. 새로 뽑힌 감시위원들은 일을 시작하자마자 투정부터 했다. 양지말 감시위원이 "촌장이 하는 일을 우리들이 제대로 알 수가 없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라고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윗말 감시위원이 나섰다. "촌장이 하는 일을 우리가 잘 모르니 잘 아는 사람을 쓰면 어떻겠는가." 이에 "그거 좋은 생각이네. 그러니까 보조를 두자는 것 아닌가." 산넘이 감시위원이 말했다.

이들은 보조를 두기로 합의하고 촌장에게 말했다. "우리들이 보조를 두되 시시콜콜 따지지도 않을테니 알아서 보조들 품삯 좀 챙겨 달라"고. 촌장은 속으로 말했다. '보조 품삯이 내 돈이냐, 네 돈이냐. 어차피 주민들 돈인데. 더욱이 따지지도 않는다면 나와는 한배를 탔다는 것 아닌가. 그래 둘테면 둬라.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지 뭐' 라고.

결국 양반고을 감시위원들은 '말타면 종두고 싶은 속물' 이었다. 요즘 충북도의회가 예전 양반고을 감시위원들을 꼭 빼닮았다. 보좌관 타령에 도정 질문 횟수도 제한했다. 결국 지난 8일 열린 충북도의회 임시회는 '의원 퇴장'에 '집행부 두둔'등으로 '알맹이 없는 도정질문'이었다. 기가 막힌다. 충북도의회가 '속물 바이러스'에 심각하게 감염되고 있다.

이를 어찌하면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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