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오상영 영동대 경영학과 교수

필자는 지난 주말에 모 중소기업 사장과 저녁 식사를 했다. TV를 보면서 식사를 하던 사장이 탄식을 한다. 20년이 넘게 허리가 휘어져라 열심히 일하며 살아왔지만 작년 한 해 공직자들의 늘어난 재산만큼도 못하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다는 생각도 들겠지만 그를 위로하기 위해 운명론의 농을 하기도 분위기가 어색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無所有)를 꺼내기에는 그가 기업인이고, 역학으로도 휘휘해 보이는 그의 가슴을 메우기가 어려워 보였다.

얼마 후 나는 사회를 탓하는 것이냐고 질문을 했다. 모호한 답을 했지만 해석해보면 자책하고 있었다.

그의 모호한 답 속에서 나는 인류 역사가 풀어내지 못하는 수수께끼를 다시 뇌리 속에 떠 올렸다.

인간 세상의 선악을 구분하고 사탄을 적대하고 인과응보의 업보의 가르침을 전파한 종교적 교리(敎理)나, 선악의 시발점을 개인 또는 사회에서 찾고자 했던 노자와 공자의 사상이나, 옳고 그름에 대한 절대적인 규범은 없다고 주장하던 소피스트(sophist)들이나, 이에 대응하여 죽음으로 절대적 보편타당성을 입증하려 했던 소크라테스와 같은 대단한 철학자가 이 중소기업 사장님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 결론적으로 그가 자포자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기업인으로서 한 국가의 경제적 환경과 정책적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사장이 갖는 가장 큰 고통의 대부분은 첫째는 생산 자금(자본)의 부족이고, 둘째는 인력(노동)의 부족을 꼽는다. 이 사장님의 고통도 똑 같았다.

중소기업을 위해 국가가 자금을 풍족하게 지원해야 한다는 정책의 당위성과 자본주의 체제의 자본 운용에 대한 책임을 자신이 갖어야 한다는 개념에 대한 상충된 자본 인식과 국가가 노동력 공급을 원활히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납세자로서의 주장과 구직자에게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는 임금, 복리후생 등의 문제점에 대한 기업의 책임 문제가 우선이라는 생각이 가슴을 짓누르지만 이것이 인류가 갖는 수수께끼인 것이다.

그렇지만 다행인 것은 중소기업이 고통스러워하는 자본과 노동의 언급은 전통 경제학의 틀이 틀리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이어서 경제학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한 가닥의 희망은 있는 것 같다.

본래 한계생산성이란 것이 투입된 요소에 대한 생산의 증가분을 말하지만 일반적으로 경제학에서는 자본의 한계생산성이 노동의 한계생산성보다 높다고 한다.

다르게 말하면 죽도록 노동하는 것보다 잘 파는 것, 회계(會計)를 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사장의 고통은 죽도록 노동을 했는데 남은 것이 없다는 것이고, 요즘 젊은이들이 문제가 많아서 힘든 일을 하지 않으려다 보니 사람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국내 중소기업의 대부분의 고민과 다를 바가 없다. 그렇지만 조금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보자.

손자병법에서는 "지피지는 백전불태"라 했다. 남을 통해 나를 알고, 나를 알고 남을 알면 백번 싸워 위태로운 것이 없다는 뜻이다. 문제의 발상을 남을 통해 나를 이해한다면 틀림이 없을 듯하다.

젊은이든 늙은이든 힘든 일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죽도록 노동을 하는 것보다는 종업원이 진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듣기만 해줘도 생산성이 높아진다. 종업원 중심의 시스템을 만들어 가면 생산성은 가파르게 상승한다.

이것이 자본한계생산성이다. 또한 인력 채용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이 갖는 생산성은 사람마다 다르다. 지방대 졸업생, 전문대 졸업생의 부족한 면만 탓하다보면 숙련자는 길러내지 못한다. 종업원이 생산에 기여한 만큼 임금을 책정하고 임금 수준에 맞도록 적정하게 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저임금 기반 성장의 시대는 끝났다. 노동한계생산성을 고려한 인적자원관리가 중소기업 인력난의 열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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