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정문섭 〈논설위원〉

2004년 10월 보궐선거에 출마해 58.9%의 득표율로 당선됐던 황주홍 강진군수.

그는 이후 1년 6개월 뒤에 치러진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76.1%라는 광주와 전남 지방에서는 최고의 지지율로 재선된다.

정당공천제폐지특별위원장이었던 그는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는 전라도 텃밭에서 민주당 공천을 거부하며 굳이 무소속의 가시밭길을 선택하여 어렵사리 3선에 성공했다.

그는 고향군수로 일하는 동안 군정 구호를 세 번 바꿨다. 초선 시절 구호는 '지금 강진은 변화하고 있습니다', 재선 시절 구호는 '인구감소 해결 - 그 꿈의 기록에 도전합니다', 민선 5기의 구호는 '정직·친절·화합은 강진의 자본입니다'였다.

잠시 행적을 더듬어 보자. 2004년 10월 군수로 취임한 그는 군 단위 최초로 '스포츠기획단'을 신설해 강진군을 전국 제일의 스포츠메카로 자리매김하게 했고, 자치단체 중 최초로 강진형 맞춤 '드림팀제'를 시행해 일하는 공직풍토를 조성했다.

재임기간 동안 또한 강진청자축제를 전국 최고의 축제반열에 올려놓았고, 성공적인 출산 정책으로 지역 인구를 증가시켰다.

그의 업적 중 백미는 강진군의 공교육 내실화다.

강진군의 열악한 교육환경은 고등학교 신입생 미달 사태가 빚어졌고, 급기야는 학교 통폐합 논의마저 나왔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2005년 4월 설립한 것이 강진군민장학재단이다.

'교육 때문에 고향을 떠나는 일만은 막자'는 표어는 주민과 출향인사들의 애향심을 자극시켰다.

나는 못 배웠어도 자식 손자는 교육시켜야 한다는 염원은 주민들의 기부행렬로 이어졌다. 기업인, 농민, 식당주인, 좌판 상인에 심지어 노인들도 꼬깃꼬깃한 1천 원 지폐까지 내놓았다.

10만원 미만 소액 기부자가 전체의 58%를 차지했고, 이 과정에서 건설업자와 공직자들도 기부에 동참했다.

해마다 15억~20억 원의 장학금이 모아지면서 기금 총액이 200억 원을 넘어섰다.

이를 토대로 군내 학교에 매년 20억 원을 지원했다. 우수 학생을 뽑아 장학금을 주고, 유명 강사를 초빙해 무료 논술강좌도 열었다.

방과 후 교육프로그램을 강화하고, 겨울방학엔 고교 진학 예정자들을 미국과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도 보냈다.

이런 노력 덕분에 강진고는 40년 만에 6년 연속 서울대 합격생을 배출했고, 수도권 대학 진학자 수는 그의 재임기간 중 세 배 이상 늘어나면서 정원을 못 채우던 학교는 대도시 학생들까지 지원하는 '돌아오는 학교'로 탈바꿈했다.

황주홍 군수는 2010년 군수 취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권력과 권위주의를 탐하지 않을 것입니다. 군수 자리가 벼슬이라고 잘난 체하면서 권위주의에 빠져들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돈을 탐하지 않을 것입니다. 강진이 배출한 불세출의 민족 스승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가르쳤던 대로, 모범적인, 가장 모범적인 목민관이 되어 보도록 노력하고 또 노력해 보고 싶습니다. 이것이 소박하면서도 절실한 제 꿈이고 진실한 제 다짐입니다."

이런 그에게 지금 장을 담그다 생긴 구더기 두 마리를 보고 장 담그기를 멈추라고 하는 몰지각한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장학금을 조성하다 빚어진 해프닝을 가지고 말이다.

통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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