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오상영 영동대 경영학과 교수

유럽의 르네상스 시대, 근대 자본주의 여명기에 영국의 대법관인 토마스 모어(Thomas More)는 그의 저서 유토피아 첫 머리에 "양들이 사람을 잡아먹고 있다"는 독한 풍자를 기술한다.

그래서 일까. 요즘으로 보면 국회의장, 대법원장, 국무총리를 모두 합친 정도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손에 쥐었던 토마스 모어였지만 그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그 모습이 흡사 소크라테스와 같았다.

그는 영국을 움직일 수 있는 정치력을 갖고 있었지만 '正義(정의)' 앞에 목숨을 던지고 만 것이다. 당시 영국은 자신을 위해 평생을 살아온 농노들을 무자비하게 죽이는 영주들의 횡포가 극심했다.

1572년 엘리자베스 1세의 법에 따라 주인을 만나지 못한 농노는 반역자로 낙인이 되고, 사형을 당하게 된다. 가히 가혹한 정치가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공자(孔子)의 말이 되뇌어지는 현실이었다.

이러한 사회 현상에 대해 토마스 모어는 자신의 영달은 꿈에도 없었고, 국민의 우상이었지만 포퓰리즘은 낯간지러운 허세였다. 그렇지만 요즘은 권력 지상주의 아마추어 정치인들이 판을 치는 것을 소크라테스, 토마스 모어가 보면 혀를 끌끌 차다가 혀가 닳아 없어질 정도이다.

누구나 생각이 있는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을 입(권력)을 통해 세상에 뱉어 낼 때는 역사의 교훈과 같이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한다.

투키디데스가 보여준 역사의 교훈이 얼마나 명확한지 모르는가.

"반값 등록금"이란 정책이 누구의 입에서 처음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반값 등록금이 갖는 경제적 함의(含意)가 중요하다. 경제적 함의를 단순히 직역해도 첫째는 대학이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경고이며, 둘째는 대학은 정치적으로 다루기 쉬운 강아지 수준의 가치(value) 평가이다. 말로는 한 세대의 지식을 가르치는 대학이라고 의미심장한 듯 발언하지만 정치인에게 대학의 힘은 초라하다.

대학 반값 등록금이란 말이 나오면 책임 있는 메이저 대학 총장 정도가 나서서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한 이건희 회장의 반발 정도는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셋째는 국민의 세금이 무섭지 않다는 의미이다. 오죽하면 재정부 관계자가 국가부채 상환 자금의 용도가 변경될까봐 반박하겠는가. 이제 현실로 돌아가 이제 왜 정치가 호랑이보다 무서운 것인지 생각해보자.

이쯤 되면 '반값 등록금'이 갖는 경제적 함의를 통해 폭발력 있는 정치적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직감 할 수 있다.

반값 등록금 정책이 야당보다도 여당의 원내 대표가 언급한 것이라면 상당한 정치적 파괴력이 있을 것으로 봐야한다. 사나이가 칼을 뽑으면 호박이라도 찔러야 하는 것처럼 반값 등록금은 결국 사립대학을 옥죄게 될 것이다.

대학등록금을 낮춰야 한다는 명분은 퇴출 대학을 선정하게 되고, 이를 통해 상당한 사회적 혼란도 야기 될 것이다. 작년 말에 발표된 모호한 기준의 부실대학 판정도 반값 등록금의 잣대에 맞추게 되면 명확한 기준이 되고, 결국 많은 대학들은 현 정권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반값 등록금으로 몰아 퇴출시킬 대학은 어떤 대학일까. 상식적으로 수도권 소재 대학은 피해 갈 것이다. 그나마 중소도시 인근의 대학도 운이 좋으면 피해 갈 것이다. 남은 대학은 농촌에 자리 잡은 대학, 소도시 인근에 위치한 대학, 수도권에 멀리 있는 대학이 대상이다.

이 대학들이 20여개 대학이 될 것이라고 보면 우리나라의 20개의 읍.면 소재지 경제 파탄은 불 보듯 빤하고 상당한 실업자도 발생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웃음이 나오는 것은 이러한 대학 수십 개 퇴출해봐야 퇴출 규모가 작아 별 효과도 없다. 그저 정치가 사람을 잡아먹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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