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정문섭 논설위원

단체장과 행사장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행사를 주관하는 관할지역 단체장이 지역의 행사를 나 몰라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역의 각종 행사에 참석하다 보면 행사장만 돌아도 단체장은 하루가 모자랄 정도다. 그만큼 지역에서는 매일같이 수많은 행사들이 열리고 있고, 대부분 단체장들은 재선 또는 삼선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발품을 파느라 여념이 없다. 행사를 주관하는 쪽에서도 단체장이 참석해야 제대로 모양새를 갖췄다고 평가한다.

그런데 역으로 생각해보면 단체장의 행사장 참석은 주최 측에는 생색이 나는 일일지 몰라도 전체 지역민들 입장에서 생각하면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단체장이 행사장만 챙기다 보면 행정을 챙기고 지역의 밑그림을 그릴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노관규 순천시장은 "정치가가 정치를 하려면 정치철학이 있어야 하듯, 단체장도 자치단체를 이끌어가려면 나름대로의 자기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지역의 비전과 밑그림은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단체장이 여론을 수렴하고, 공부하고, 사색하고, 사색의 편린들을 되새김질하는 동안 조금씩 조금씩 형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공한 단체장들은 행사장에 참석하는 것을 자제하는 편이다.

소모임도 청탁으로 이어질 것을 경계해 참석을 꺼린다. 지역의 발전은 통상 단체장의 마인드와 궤(軌)를 같이 한다.

지방자치가 성공하는 지역을 보면 리더십을 가진 단체장이 먼저 지역의 비전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 비전을 공무원, 지역주민들과 공유하게 되면 지역의 비전은 더욱 탄력을 받는다. 지역의 발전도 지역의 자치단체장이 공부한 만큼 더욱 발전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래서 자치단체를 성공적으로 이끌어가는 단체장들은 스스로 자질을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세계 유수 도시의 발전과정을 학습하고 또 국내에서 급성장하는 다른 도시의 변화상도 연구한다.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강연을 듣고 난상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황주홍 강진군수는 경조사(慶弔事)에 거의 참석하지 않는 단체장으로 소문이 나 있다.

국회의원들이 지역의 작은 행사장까지 쫓아다니는 것을 보면서 "저렇게 해서 언제 국정을 파악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들 때가 많았다."는 그는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행사장과 애경사에 참석하는 것을 최대한 억제하고 있다.

단체장이 행사장과 애경사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그의 표현대로 재선에 뜻을 둔, 표를 먹고 사는 선거직 단체장으로서는 어리석은 선택이 될 수도 있다.

대신 시정, 군정에 더 전력투구해서 확실하고 차별적인 성과를 낸다면 행사장이나 경조사에 가지 않음으로써 손해를 보는 표 이상을 만회할 수 있다.

단체장이 행사장과 애경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 행정은 그만큼 소홀해지고, 자치단체의 발전은 2순위로 밀리게 된다. '내빈 소개, 따분한 행사는 가라' 지자체 행사에서 내빈소개를 없애고 축사와 격려사, 환영사를 최소화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민선지방자치가 본격적으로 실시된 지도 어언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역민들도 단체장이 지역발전을 위해 매진할 수 있도록 이제는 행사장에서 놓아주어야 할 때다.

이 칼럼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지원으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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