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박상언 한국지역문화지원協 사무국장

정체성이란 차별성과 동일성의 복합물이다. 여기서 차별성은 다른 존재와의 상이성을 뜻하며, 동일성은 다른 존재와의 동질성을 뜻한다.

그러므로 정체성은 공통된 역사적·문화적 배경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이 타자와 시·공간적으로 구별되면서도 아울러 동질적으로 귀속되는 심리 상태를 나타낸다. 이에 지역정체성은 한 지역공동체가 다른 지역과 비교되는 가운데 갖게 되는 정체성을 이른다.

그러나 개인이든 집단이든 그 정체성이 무엇인지 판단하는 기준은 쉽지 않다. 철학자 탁석산은 정체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현재성, 대중성, 주체성을 꼽는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 얼마나 의미 있고 중요성을 갖는지(현재성), 많은 사람이 얼마나 공감하고 있는지(대중성), 그리고 한 현상에 대한 표면적 태도가 아닌 이면적 태도는 어떠한지(주체성)를 고찰해야 정체성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체성은 흔히 '~적인 것' 또는 '~다운 것'으로 풀이할 수 있으며, 지역정체성은 '지역적인 것', 또는 '지역다운 것'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한편 "사회는 동일성에 기초하여 차별성을 수용하도록 작동한다. 지역의 정체성이 확립되어 있지 않다면 그만큼 사회가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이유다. 특히 사회안전망은 지역을 관리하는 목적에 해당한다. 인류의 생태적 위협은 환경적 지속가능성에 달려 있지만, 인류사회의 안전망은 사회적 지속가능성에 달려 있다"(소진광·박철희) 사회적 지속가능성을 최대화하는 것이 문화이며, 이 문화가 지역정체성 확립을 위한 핵심 기제다. 이렇게 확립된 지역정체성은 지역사적(地域史的)으로 일관성, 지속성, 가변성을 띠면서 지역사회 구성원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고 지역사회를 통합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문화란 오랜 시간의 켜를 간직하기 마련이다. 그 중에서도 일정한 지리적 공간을 중심으로 유·무형적으로 양식화한 것이 지역문화이다.

이렇게 시간, 공간, 인간의 삼간(三間)이 만나면서 형성되는 지역문화는 주민들에게 살맛을 준다. 그러므로 제대로 된 지역문화정책은 지역의 정주(定住) 가치를 높이고 주민들의 행복감을 배가한다. 결국 문화정책은 지역 정체성을 확립하고 지역사회를 통합하는 최상의 정책이다.

지방자치 도입이후 분명해진 것은 각 자치단체가 지역주민의 문화적 삶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는 사실이다. 각종 문화시설과 문화 향수권이 확대되었으며, 지역축제로 대표되는 지역문화의 산업화도 촉진되었다. 물론 전문성 결여, 예산 부족, 제도적 역할의 혼선 등으로 프로그램이 없는 전시행정의 한계를 드러냈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축제의 경우 지역 특성이 고려되지 않은 연례적인 행사 이상의 것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지역 발전의 주요 자원이 예술문화라는 인식은 더욱 확고해졌다.

대부분 자치단체가 문화정책이 지향하는 바를 망각하고 있다. 지역정체성의 확립, 그리고 이를 통한 지역사회 통합이라는 목표를 잃어버린 듯하다. 우리 것이 아닌 남의 것을 모방하거나 짜깁기하고, 먼저 지역민에게 살맛을 주기보다는 타지인의 발길을 잡는 데만 열중하고 있다. 순서가 뒤바뀐 것이다. 지역문화정책은 지역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간직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새로운 행사를 기획하고 그럴싸하게 보여만 주려는 것은 정책의 허울을 쓴 쇼다.

폐허화한 공장 지대를 문화 지구(코인 스트리트, 런던)로 만들고, 커스터드 소스 공장을 그대로 복합 문화공간(커스터드 팩토리, 버밍엄)으로 꾸미고, 제분공장을 현대미술관(발틱 센터, 뉴카슬)으로 바꾸어 지역 재생에 성공한 영국 도시 몇몇을 돌아보면서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에게도 그런 예가 없지 않고 또 그런 것만이 최선이 아니라는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걸핏하면 땅을 파고 길을 내고 건물을 세우는 데만 골몰하는 우리나라 지역개발정책이 하도 답답해서 하는 소리다. 문화가 곧 환경이자 생활인 이 시대의 문화정책은 모든 지역발전정책을 두루 포함하는 종합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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