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정문섭 〈논설위원〉

'보통사람' 노태우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정계의 화제가 되고 있다.

말로만 들었던 수천억 원대의 정치자금 문제를 거론했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은 9일 발간된 회고록을 통해 김영삼 총재가 1992년 5월 민자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을 때 (대선에서) '적어도 4천억~5천억 원은 들지 않겠습니까?'라고 해서 금진호 전 상공부 장관과 이원조 의원을 소개시켜주고 이들을 통해 2천억 원을, 그 뒤 대선 막판에 김 후보 측의 긴급 지원 요청에 따라 직접 1천억 원을 지원했다고 했다.

본인도 1987년 대선에서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지원한 1천400억 원과 당에서 모은 500억 원 등 총 2천억 원의 선거자금을 썼다고 밝혔다.

또한 자신이 수천억 원의 비자금을 퇴임 후까지 갖고 있었던 것도 "김영삼 당선자가 청와대에 오려 하지 않아 후임자에게 자금을 전해줄 수 없었기 때문이며, YS 당선자를 위해 청와대 금고에 100억 이상을 남기고 나왔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영삼 전 대통령 측 김기수 비서실장은 "두 분 사이에서 오간 일이고 나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며 즉답을 회피했다.

검찰도 회고록만 보면 정치자금법 위반이 확실하나 이미 공소시효 5년이 지났다며 곤혹스러워하는 모습이다.

회고록은 과거에 있었던 주요 사건에 집중하여 그 관계자가 회상 형태로 집필하는 글이다. 그래서 전직 대통령의 회고록은 역사의 소중한 기록으로 평가받는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회고록을 통해 김영삼 전 대통령을 보는 시각도 솔직하게 드러냈다.

'나는 왜 그의 인간됨과 역사관을 오판했을까' 하는 것들이었다. 취임 전에 만나본 김영삼은 정치에서 쌍방 간에 시각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고, 1987년 대선 결과에도 승복하지 않는 고집불통이었으며, 대통령이 된 후 2년간 매주 만나다시피 했지만 국가 경영을 피상적으로 접근하는 인상이었다는 점, 권력을 향해 하나에서 열까지 투쟁만 하려는 자세, 6공화국의 민주성마저 부인하는 것을 보고 자책감을 느꼈다고도 했다.

물론 노 대통령도 자신을 감옥에 집어넣은 장본인이기에 더욱 곱지 않은 시선을 갖고 있을 것은 미루어 짐작이 가능하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김영삼 전 대통령은 IMF라는 대한민국 사상 초유의 국가부도 사태를 맞게 한 무능한 대통령이었다.

그는 중학교 시절에 세웠던 대통령이라는 꿈은 이뤘지만 정작 대통령이 되고난 후 무엇을 하겠다는 청사진조차 없었던 인물이었다.

투사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수호신처럼 행동했던 그가 검은 조직과의 연결고리를 허용한 것도 모자라 스스로 돈까지 요구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한때 전두환 대통령이 김영삼 전 대통령을 주막강아지라고 비아냥하자 김 전 대통령은 전 전 대통령을 골목강아지라고 맞받아친 적이 있다.

이를 두고 개그맨 김형곤은 "그러고 보니 우리가 강아지들에게 나라를 맡긴 지 꽤 오래 되었다"고 말해 좌중을 온통 웃음바다로 만든 적이 있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친자식 소송에서 패한 이후에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6공 인사에게 정치자금을 받아 쓰고도 이들을 감옥에 구속시킬 때에는 정의의 화신인 냥 행동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

이번에도 그가 침묵 모드로 적당히 넘어가려 할지 국민들은 두눈을 부릅뜨고 지켜 볼 일이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