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광섭 청주공예비엔날레 부장

영화 <카사블랑카>는 2차대전 중 도피해 미국으로 가려는 사람들이 비자를 얻으려고 끝없이 기다리면서 겪는 공포와 두려움, 무기력과 희망을 담은 영화다.

흥미롭게도 이 영화는 잉그리드 버그만을 제외한 모든 배우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담배 연기 속에 인생의 덧없음과 시공의 불확실성을 담고 있는 것이다.

웨인 왕 감독의 <스모크>는 한 담뱃가게를 중심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고단한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강도와 살인과 실직과 이별 등 수많은 사연과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은 담배를 피우면서 패배자의 잃어버린 시간을 달래는데 영화에서 담배는 인생의 맛을 새롭게 느끼는 안락의 순간이자 슬픈 과거를 잊는 해독제 역할을 한다.

10cm에 불과한 담배에서 흘러나오는 연기에는 인간과 인연을 맺어온 수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전장에서는 기호품으로 사용되었고, 산업시대와 근대화에는 국가 발전의 성장동력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더 나아가 나라와 지역마다 다양한 문화 및 사람들의 속살이 묻어 있으며 창조적 진화라는 인류의 역사를 함께 돌아왔다.

담배는 감자, 고추, 토마토와 함께 가지과에 속한다.

'토바코(Tobacco)'의 어원은 1492년 콜럼버스 일행이 서인도에서 인디언들에게 말린 잎담배를 선물로 받을 때 그들이 사용하던 흡연기구인 토바카(Tobacco)에서 비롯되었다.

'시가(cigar)' 역시 담배 모양이 매미를 닮았다고 해서 원주민들이 사용하던 매미라는 뜻의 시가타(cicada)에서 유래했다.

한국에는 일본과 중국 등으로 통해 들어왔을 것으로 짐작된다. 1614년에 지어진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는 "남령초라고도 하는 담배는 근세 왜국에서 들어온 것인데 잎을 따 말려서 불을 붙여 피운다. 병든 사람은 대통을 가지고 그 연기를 마신다. 한번 빨면 그 연기가 콧구멍으로부터 나온다. 능히 다모가 하습을 제거하며 술을 깨게 한다. 그러나 독이 있으므로 경솔하게 사용하면 안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담배가 조선시대에는 의약품과 기호품으로 사용되었음을 설명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사랑방은 남자들의 서재이자 사교의 장이었다. 담배를 말아 피우거나 이와 관련된 생활공예품이 많았다. 재떨이, 타구, 담배보관함, 담배 파이프 등 한국인만의 서정과 디자인과 품격을 담았으니 그 시대의 풍류와 자화상을 엿보고 싶다면 담배와 관련된 유물과 사랑방 이야기에 마음 주면 어떨까.

담배의 가치는 농업과 제조업, 서비스업, 그리고 미래산업인 문화콘텐츠까지 모든 것을 아우르는 멀티산업이다. 시골에서는 콩알보다도 작은 씨앗을 뿌려 싹을 틔우고 밭에 옮겨 심은 뒤 잎을 수확해 건조, 선별, 조리, 포장 등의 과정을 거쳐 납품을 한다. 이 과정에서 최고의 등급, 최고의 가격을 받는 것은 단연 황금색의 마른 잎담배다.

불과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시골의 주 수입원은 쌀농사와 담배농사였으니 자녀 학자금을 마련하고, 결혼 밑천을 준비하는데 요긴하게 쓰였다.

수매된 담배는 공장에서 곱게 갈은 뒤 코코아, 글리세린, 설탕 등 미각을 돋우는 성분을 첨가해 완제품을 만든다. 한국에서 생산된 담배는 '승리', '장수연'을 필두로 500여종에 달한다.

옛 청주연초제조창을 비롯해 원주, 광주, 신탄진 등 전국에 10여개의 공장이 있었으나 지금은 원주, 광주, 신탄진, 영주 4개만 남아 있다. 담배가 생산되면 정부 인가를 받은 운송회사를 거쳐 시중에 유통되었는데 이름하여 '담뱃가게'다.

담배는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을 장식하고, 문화의 한 코드로 세상과 뜨겁고 소통해 왔다.

삶의 애환을 달래기도 했지만 죽음을 재촉하는 저승사자이기도 한 야누스의 얼굴을 하고 있다.

이처럼 요상하고 이해하기 힘든 담배가 새로운 비밀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미래를 향한 새로운 문화의 창을 열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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