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정 문 섭〈논설위원〉

온 국민의 명절인 추석이 지나갔다. 분주한 일상을 뒤로하고 가족들과 고향사람들과 만나는 추석은 언제나 그렇듯 민심이 오가는 소통의 현장이다.

추석 때에는 20대에서부터 80대에 이르기까지 연령을 초월하여 많은 대화가 이루어진다. 모처럼 온가족이 둘러앉아 함께 식사하고, 차례를 지내고 음복을 하면서 많은 이야기꽃을 피운다. 소통의 현장에는 많은 유명 인사들과 다양한 현안들이 흥미진진한 대화의 소재가 된다.

올해도 최근 이슈가 됐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 잠정 은퇴를 선언한 개그맨 강호동, 서울시장 불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서울대 교수, 서울시장에 출마하겠다고 나선 박원순 변호사, 경쟁후보 매수의혹을 받고 있는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등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입줄에 오르내렸다.

가장 백미는 서울시장 출마를 박원순 후보에게 양보하면서 대권후보로까지 거론되는 안철수 교수의 안풍(安風)바람이었다.

안 교수가 화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가 기존의 정치인들에서 느낄 수 없는 신선함을 간직한 때문이었다.

트위터를 도배했던 대세 안철수, 거품 박근혜, 사망 오세훈, 돌풍 박원순, 희망 문재인, 자위 나경원, 철새 손학규, 잠수 이재오, 허풍 김문수, 구태 홍준표는 민심의 바로미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를 의식한 탓인지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도 최근 '현장과 소통'을 부쩍 강조하고 나섰다. 젊은 층과 소통의 필요성을 느낀 박 대표는 12일 5촌 조카인 가수 은지원과 함께 찍은 사진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다.

그러나 인터넷 세대들은 박 대표마저도 구시대 인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한명숙 전 총리가 추석을 마치고 불출마를 선언했다. 여론을 반영한 당연한 결정이었다. 이제 추석연휴를 지낸 정치인들은 여론 동향을 살피며 자신들의 입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명절 민심이 정국의 향배 결정에 결정적 역할을 함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전하는, 기자들이 전하는 이번 추석민심의 실체는 무엇일까. 필자가 보기에는 크게 2가지로 요약된다. 국민들 입장에서 역시 가장 관심사는 경제문제였다. 실업난과 취업난, 물가난으로 살기가 더욱 힘들어진 국민들은 정치권을 향한 비난 수위를 한층 더 높였다.

함포고복(含哺鼓腹)이라는 말이 있다. 중국 요나라 시대 민심을 파악하고자 거리에 나선 요 임금은 한 노인이 나무그늘에 앉아 배불리 먹고 배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본다.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네, 밭을 갈아 먹고, 우물을 파서 마시니, 내가 배부르고 즐거운데, 임금님의 힘이 나에게 무슨 소용인가!" 함포고복은 임금이 누군지 모를 정도로 이상적인 정치를 펼 때 쓰는 사자성어다.

두 번째는 정치인들에 대한 냉소가 더욱 깊어졌다는 것이다. 때문에 '한국 정치는 국민은 없고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정치를 한다.'는 안철수 교수의 핵심논리는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정치인들을 겨누고 있다. 안철수 신드롬은 여당과 야당이 제몫을 하지 못하니 그 틈새를 파고든 결과다.

일찍이 순자(荀子)는 '군자는 배요 백성은 물(君子舟也 庶人者 水也)'이라고 했다. 배는 물이 받쳐주어야 뜨듯 지도자는 국민들의 신뢰가 없으면 무너지고 만다. 물은 평소엔 조용히 있는 것 같지만 성이 나면 배를 뒤집어엎기도 한다.

국민적 신뢰를 받지 못하는 정치인들은 언제든 삼킬 수 있다. 추석 민심의 실체는 '함포고복'과 '신뢰' 크게 두 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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