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정문섭〈논설위원〉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은 19세기 초 프랑스 작가 빅톨위고가 쓴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은 주인공인 날품팔이 노동자 장발장이 누나의 남편이 죽자, 일곱 명이나 되는 조카들을 먹이기 위해 빵을 훔치다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는다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장발장은 수감과정에서 여죄가 드러나 결국 19년이나 복역을 한다.

위고가 이 소설을 쓴 19세기 초는 프랑스 혁명 이후 정치적 혼란이 가중되던 시기였고, 산업혁명으로 인해 빈부의 격차가 심하게 벌어지던 시기였다.

그로부터 200년이 흐른 지금 국민소득 2만 불이 넘는다는 대한민국에서 현대판 장발장 사건이 심심찮게 터지고 있다.

얼마 전에는 전주에 사는 한 대학생이 절도죄로 불구속 입건됐다.

대학 1학년인 이 군은 낮엔 공부하고 밤엔 공장에서 일해 왔으나 당뇨로 고생하던 어머니가 우울증까지 겹치면서 생활이 어려워지자 점퍼와 영어문법책 등을 훔쳤다.

점퍼는 밤에 공장을 오가는데 너무 추워서, 문법책은 공부하는데 꼭 필요해서였다.

이 사연이 알려지자 '연락처와 계좌번호를 알고 싶다','등록금을 대겠다.'며 경찰서에 걸려온 전화만 백여 통이 넘었다고 한다. 서점 등 피해자들도 한 결 같이 선처를 부탁했다.

살길이 막막해 저지르는 '장발장'식 생계형 범죄도 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추석을 하루 앞두고 30대 주부가 삼겹살을 훔쳤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남편의 사업실패로 생활고를 겪던 그녀는 추석전날 "고기가 먹고 싶다"는 두 아이들의 말에 대형마트에서 삼겹살을 가방 속에 숨겨서 나오다 그만 붙잡혔다. 경찰은 범행 액수가 적고 초범인 점을 감안해 김 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그녀의 사연이 알려지자 "오죽했으면 그랬겠느냐, 고기를 보내주고 싶은데 주소를 알려 달라"는 시민문의가 잇따랐으나 그녀는 신변 노출을 꺼려 정중히 거절했다고 한다. 김씨의 경우는 그야말로 춥고 배가 고파 어쩔 수 없이 저지른 케이스다. 그러나 아무리 생계형 범죄라고 해도 이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명백한 범법 행위다. 사회가 이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들도 사고방식이 올바르지 않으면 계속 쉬운 범죄만 저지르게 된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리버사이드 카운티 법원은 최근 절도 혐의로 기소된 스콧 앤드루 호브(45)에게 29년 징역형을 선고했다.

용접공인 호브는 건축자재 유통점에서 용접용 와이어와 작업용 장갑을 허리춤에 숨겨 나오다 직원에게 붙잡혀 경찰에 넘겨졌다.

호브가 훔친 물건 가격은 고작 20달러 94센트로 한국 돈으로 2만 2천원에 불과했으나 삼진아웃제가 적용된 케이스다.

반면에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상급법원은 최근 25년형을 선고받고 13년을 복역하던 그레고리 테일러의 석방을 명령했다.

올해 47살인 테일러는 13년 전 로스앤젤레스의 도심에 있는 한 교회에서 음식을 훔쳐 먹다 붙잡혔고, 그 역시 3번 이상 범죄를 저지르다 삼진아웃법에 따라 25년형이 선고됐다.

그가 전에 저지른 다른 두건의 범죄도 하나는 10달러가 든 지갑을 훔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행인의 주머니를 털려던 것이었다. 이들은 도벽을 멈추지 못해 결국 스스로를 어려운 상황으로 이끌고 간 것이다.

'레미제라블'의 매력은 인간적인 냄새가 물씬 난다는 점이다.

사회에 안전망을 설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풋풋한 정을 나눌 수 있는 인간냄새도 사회에는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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