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 변광섭 청주공예비엔날레 부장

영겁(永劫)의 시간, 천년의 세월이 지났다. 올해가 고려대장경이 조성된 지 천년이 되는 해라는 뜻이다. 어느 시대든 당대의 이야기와 기억을 담기 위한 저장고가 있었다.

문자와 활자가 없던 시대에도 소중하고 아름다운 그 무엇을 담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선사시대에 그려진것으로 유추되는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는 10개의 바위에 각종 동물과 사람, 배, 작살 등이 담겨져 있다.

이는 사냥과 풍년에 대한 그들만의 염원을 담고 있으며 그들의 삶과 이야기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탐하고 보다 실용적이며 가치있는 삶을 기록하고 싶은 인간은 이후 글자와 종이를 만들었으며 목판활자에 이어 금속활자를 만들면서 정보혁명의 신기원을 기록했다. 근대에 와서는 필름과 디지털과 컴퓨터 등이 수많은 이야기를 담는 그릇 역할을 하고 있으니 인간의 창조적 역량과 진화는 쉬이 멈추지 않을 것 같다.

대장경은 부처님의 말씀을 담는 그릇이다. 장(藏)은 간직하다, 저장하다 등의 의미이고 경(經)은 실이나 끈을 가리키는 수트라를 번역한 것으로 '부처님의 말씀'이란 뜻이다.

부처님의 말씀을 기록하고 보관하는 저장고가 곧 대장경인 것이다. 입으로만 전해지던 부처님의 말씀을 목판인쇄술로 만들었고 세월이 지나 1377년에는 청주에서 금속활자로 '직지'라는 책을 새롭게 선보이게 되었다. 목판인쇄술보다 훨씬 정교한 기술과 혁신적인 역량을 보이게 된 것이다.

팔만대장경을 전부 쌓으면 높이 2천744m로 백두산보다 높다. 길이로 치면 60km에 달하며 280톤의 무게에 5천200만자의 글자가 들어있고 다 읽으려면 30년이 걸린다. 이 엄청난 규모의 프로젝트는 1237년에 시작해 12년간 계속되었다. 동원된 연인원만 130만 명에 달한다. 목재를 뻘에 담그거나 소금물에 찌고 스님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써 내려가면 원본을 판목에 붙여 정성스레 새긴다. 판각이 끝난 경판은 교정을 거쳐 닥나무 껍질과 풀을 섞어 만든 종이로 인쇄를 한다. 이처럼 최고의 기술과 정성으로 만들었으니 영겁의 세월이 흘러도 흐트러짐 없이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이다.

직지는 또 어떠한가. 글자본을 제작하고 밀랍을 녹여 판형틀에 붓고 응고시켜 밀납판형을 만들었으며 그 위에 결정된 글자본을 뒤집어 붙였다. 이어 어미자를 만들고 밀납가지와 주형(거푸집)을 만들었으며 청동을 녹여 주형의 입에 쇳물을 붓고 쇳물이 식으면 단단해진 거푸집을 파내서 활자 가지쇠를 들어냈다. 그리고 쇠톱을 사용해 활자를 하나씩 떼어내 인쇄틀에 조판을 한 뒤 인쇄를 하기 시작했다. 인쇄용지는 닥나무 껍질을 베고, 찌고, 담그고, 짜고, 말리는 등 99번의 과정을 거쳐 100번째 장인의 손에서 나온다는 한지만을 사용했으며 금속에 잘 묻는 유연먹으로 애벌인쇄를 했다. 그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누가 말했던가. 쉬운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어느 스님은 "먼 곳을 가려면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 시작하고, 높은 곳에 오르려면 반드시 낮은 곳에서 시작해야 한다. 살다보면 수많은 욕망의 덫과 유혹에 빠지겠지만 그 욕망을 잠재울 수 있는 내밀함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선(禪)"이라고 했다. 굳이 선을 이야기 하지 않아도 대장경이나 직지는 수많은 장인들의 땀과 기예와 열정과 창조정신이 있었기만 만들 수 있었다.

천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리의 삶이 아슬아슬하다. 지금 우리는 조상들이 이토록 찬연하고 훌륭한 가치를 물려준 창조 DNA를 원 없이 활용하고 있는지, 행여 비루하고 눅눅한 삶에 주저앉아 방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천년의 향기를 품고 그 길 위에 서보자. 나는 누구이며 무엇으로 살아가는지. 그리하여 나의 삶의 긍극적인 목표는 무엇이며 어떤 그릇을 만들어야 하는지 코발트블루 가을 빛 앞에서 나긋한 걸음을 좇으며 고민하면 좋겠다.

천년의 지혜, 불멸의 향기를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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