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열며] 정문섭 논설의원

MBC PD 수첩이 4일 밤 '도가니, 영화보다 아팠던 이야기'를 주제로 영화 '도가니'의 배경이 된 인화학교의 비극과 현재 모습을 재조명했다.

2005년 11월 광주 인화학교의 끔찍한 성폭행 사건을 세상에 알린 지 6년 만에 그 이후의 '도가니'를 다시 다룬 것이다.

6년 전 PD수첩을 통해 인화학교의 성폭행 사건은 접한 많은 사람들은 분노했고,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관련 교직원과 교사 등 가해자들은 응분의 처벌을 받았다.

이 사건은 이후 2011년 9월 공지영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도가니' 가 개봉되면서 더 큰 사회적 이슈가 됐다.

인터넷을 통해 알려진 소설 '도가니'와 스크린을 통해 전해진 영화 '도가니'가 공감적 울분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화가 나고, 울기도 했고, 가슴까지 먹먹했다. 내가 본 영화가 허구가 아닌 실화란 사실에 치가 떨렸다."

영화 '도가니'를 본 한 관람객의 소감은 흥행 이유를 짐작케 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이 영화를 보고 "사회적 약자나 소외계층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배려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으니 파급효과는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많은 이들이 가해자에 대해 합당한 처벌이 가해질 것으로 생각했고,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이 해결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그들의 가벼운 형량이 수화로 통역되는 순간 법정은 청각장애인들이 내는 알 수 없는 울부짖음으로 가득 찼다'는 기사 한 줄을 읽는 순간 이들을 대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 도가니의 원작자 공지영 작가가 이 소설을 쓰게 된 동기는 관심이었다.

'지식이라는 이름으로 집단을 만들고, 그 집단들끼리 권력을 나누어 갖고, 그 권력 앞에 줄을 서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법이라는 이름으로 마구 칼을 휘두르는, 국민도 없고, 인권도 없는 그들만의 세상.'

한 네티즌은 당시 이 사건을 문제 삼았던 교직원들은 해임당하고 피해학생들은 졸업 후에도 지역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슬픈 현실을 이렇게 표현했다.

'진실이 가지는 유일한 단점은 몹시 게으르다는 것이다. 진실은 언제나 자신만이 진실이라는 교만 때문에 날 것 그대로의 몸뚱이를 내놓고 어떤 치장도 설득도 하려 하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진실은 가끔 생뚱맞고 대개 비논리적이며 자주 불편하다.

진실 아닌 것들이 부단히 노력하며 모순된 점을 가리고 분을 바르며 부지런을 떠는 동안 진실은 그저 누워서 감이 입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 도처에서 진실이라는 것이 외면당하는데 실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 공지영, '도가니' 중에서-

이번 사태로 광주 '인화학교'의 법인설립 허가는 취소되었고, 사회복지사업법을 개정하자는 목소리도 거세게 일고 있다.

이번 도가니가 주는 교훈은 '소통'이다. 소통은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다. 악의 본질은 감시가 없는 틈을 타서 독버섯처럼 자라는 습성이 있다. 그러나 누군가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음을 느끼면 악의 싹은 자랄 수 없다.

도가니를 뜻하는 라틴어 'crux'라는 단어에는 '십자가', '시련'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사회의 비리와 부조리를 도려내려면 누군가가 십자가를 지는 자세로, 때로는 시련을 감수하면서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 역시 관심을 필요로 하고,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대다수는 또한 이들의 용기에 관심을 가져주어야 한다. 관심만 가져주어도 세상은 변할 수 있다. 도가니는 그러한 패러다임을 보여주었다. 소통의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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