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정문섭 논설위원

"단양 8경, 제천 10경 등 이름난 곳들을 담지는 않았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널리 사랑받는 곳들이기 때문에... 다섯 손가락이 다 아프다지만 그래도 특별히 더 아린 곳들 그 누구에게도 주목받아 보지 못했던 곳들이 이 책의 주인공들이다. 알려지지 않아 더 소중한 곳들, 더 아름다운 곳들."

엄태영 전 제천시장이 발간한 '배꼽여행'이라는 책자의 서문 내용 중 일부다.

중부내륙중심권인 제천과 단양, 강원도 영월을 알리는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구석구석에서 발품을 들인 여행의 흔적과 편린들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발전과 정체 속에서도 더 우선하는, 소통을 뜻하는 한 장의 골목길 사진, 신선한 커피 한 잔으로 여행의 여독을 풀어주는 골목길 찻집, 마을의 활력소 역할을 하는 정겨운 벽화 , 만원 한 장으로 넷이서 배불리 먹을 수 있는 허름한 음식점 등.

영월 중앙로에서는 간판정비사업의 성공사례로 재미까지 더해 주는 세련된 간판들이 하나 둘 소개돼 리더로서의 그의 끼와 안목을 엿보게 한다.

"고향을 잃는다는 것, 그것은 참 아픈 상처이다."

이 책의 백미는 마구 눌러댄 스케치 사진이 아니다.

예술성이 듬뿍 가미된 한 장의 사진들과 함께 곁들여지는 작가의 영혼이 담긴 글들이다.

한 마디 말 속에는 지역을 사랑하는 촌철살인의 내용들이 담겨있다.

"첫째, 텃새가 사라졌으면, 둘째, 지나친 관심을 끊었으면, 셋째, 조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바로 외지에서 찾아든 늘어나는 귀촌, 귀농인들이 조화로운 연착륙을 할 수 있도록 지역민들에게 당부하는 말이다.

지인들에게 선물을 할 때 꾸준히 한방차를 선물한 덕에 나의 애칭이 '향기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표현 속에는 전직시장으로서의 애민정신이 녹아나 있다.

폐교를 활용한 목공학교, 전통문화체험학교, 자작문화학교는 인생 이모작의 방향까지 제시한다.

잠시 생각을 내려놓고 찾고 싶은, 물이 흐르는 골짜기, 자동차를 타고 달리는 여행코스, 휴식을 위한 산책로, 컴퓨터 바탕화면을 연상하듯 소개되는 곳곳에 산재한 산사의 고즈넉한 풍경들.

이 책에서 음식점 소개의 글들을 읽어 내려가다 기가 막힌 글귀를 발견했다.

"맛이 있으면 밖에서 칭찬해주고, 맛 없으면 주인에게 말해 달라"는 문구였다.

누군가를 업고 있는 동상과 함께 등장하는 '더불어' 장(章)은 어느덧 이 책이 종착역에 도착했음을 넌지시 알려준다.

그 속에 소개되어 있는 글이다.

"나는 기부나 봉사 이런 말보다 '더불어', '함께' 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나눔은 기쁜 일이다. 생색 낼 일도 아니고 힘든 일도 아니다. 그저 기쁜 일이다."

'책을 마치며' 에서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바쁘게 다닐 때에는 알지 못했던 것들, 계곡마다 다른 물을 봤고, 골짜기마다 다른 소리를 들었다. 마을마다 다른 냄새를 맡았고, 사람마다 다른 울림을 받았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일방통행하면서 살아왔던 걸까?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내 나이 80에 이 사실을 깨닫지 않았다는 것이다."

책을 덮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선거철을 앞둔 정치인들이 자기 자랑의 글이 아닌 지역을 구석구석 발로 다니며 이런 책들을 쓰는 경쟁이라도 시켰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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