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김재식 저산교회 목사

덕유산에 11월의 눈이 내렸다는 소식을 들으니 이달초에 찾았던 덕유산 풍경이 명료하게 또어른다. 꾸물꾸물한 날의 산행이라 축 처진 마음으로 출발을 했는데 덕유산이 가까워오면서 안개 섞인 산등성이 주변으로 더더욱 가라앉는 마음에 휑한 찬 기운이 올라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곤도라에서 내려 향적봉까지 20여분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낯선 향적봉에서 명료한 향적봉을 향해 올라간 것이다. 힘을 들여 산을 향해 걸으니 숨은 가파오고, 일행들과의 대화로 체온이 올라가면서 점차 몸과 정신이 또렷해 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명료함이 향적봉에 오른 후 이내 실망으로 바뀌었는데, 그것은 정상에서의 실망감이었다. 그렇게 힘겹게 올라왔건만 짙은 안개로 산 아래의 절경들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다행히 산을 내려오기 전에 안개가 조금씩 조금씩 이동하기 시작하더니 정상의 희미한 절경을 보여주었다. 희미한 경치라도 볼 수 있었다는 것이 무관심했던 산아래를 주목해 바라보게 했고, 그것을 통해 몰입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곤도라 안에서 바라본 겨우살이풀들이 여러 나무에 뿌리를 내리고 더불어 사는 하는 모습은 어차피 살아가는 것은 더불어 사는 것이니 산을 벗하며 살아가는 나에게 새로운 명료함을 만나게 하며 다양한 명료함을 생각하게 했다.

잘 자고 일어난 새벽의 명료함, 잘 관리한 시간 때문에 남는 자투리시간의 기분 좋은 명료함, 아끼고 남은 재정의 풍성한 명료함, 잘 자라주는 아이들의 미래가 밝은 명료함,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들의 친근함이 묻어나는 관계의 명료함, 전통과 안정을 겸비한 교회를 바라보는 영적인 명료함이 요즈음 내가 주로 누리고 느끼는 명료함 들이다. 또한 흩어져 사라지는 문제들을 바라 볼 수 있는 여유도 누리고 있으니 좋은 인생이 늘 곁에 있다.

누구나 커다란 인생의 3대 위기를 낯설고 힘겹게 만난다. 즉 사춘기, 결혼 적령기, 중년기(갱년기)를 보내고, 보냈던 사람들에게 답들을 찾아 숨바꼭질을 하듯이 찾아도 다가오지 않는 명료함을 모른 채, 관심을 두지 않은 채, 명료함을 찾아 많은 사람들이 유랑한다. 친구를 찾고, 동반자를 만나기 위한 유랑도 있으며, 자기를 위해 노력하는 자기개발의 유랑도 모두 명료함을 찾아 떠나는 유랑이다.

무엇을 하든지 명료하다는 것은 매력적이다. 수학문제를 풀면서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사람들이 있다. 답이 정확하게 오차없이 풀어지는 것을 보면서 기쁨을 누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곳에서 나오는 명료함이 감동을 가져다주고 공식 외에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풀어가기도 한다. 비공식(非公式)적인 부분이다.

낯설은 모든 것은 서툰 모습과 두려움을 간직하지만 각자에게 주어진 삶 속에서 자기 것으로 명료화시켜 또 다른 공식으로 대입(代入)하는 작업을 꾸준히 반복해야 한다. 공식으로 가는 과정이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과정이며 그들을 사랑하는 삶이다. 삶의 전 영역에서 자기의 것이 나온다는 것이 반복과 반복의 지속과 익숙함에서 나오는 것이다. 틀 속에서 익혀진 반복된 과정이 영감으로 진행된다. 그것에서 새로운 인생작품이 나오며, 그곳에 명료함과 포근함이 따라오는 것이다. 새로운 인생작품의 비공식은 꾸준한 실험과 검증, 학문적인 노력으로 완성된 공식에 진입하게 되어 완성도 높은 또 다른 작품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공식의 틀을 벗어난 자유로운 상상력은 새로운 영감을 얻게 하고 새로운 영감에는 희열과 감동이 존재하고 그것에서 새로운 명료한 공식이 탄생되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는 고린도전서 13:12절 말씀 속의 구리나 쇠판을 밀어서 만든 희미한 거울이 아닌 명료한 성경공식의 거울을 그리워해 본다. / 저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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