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성범 제천중학교장/수필가

얼마전 퇴근길에 걸어서 가까운 서점에 들려 몇권의 신간을 사서 흥얼거리며 집에와 책을 정리하는 가운데 우연히 어느 구석에서 빛바랜 책을 접하게 되었다.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먼지앉은 그 책을 만져보고 또 만져보았다. 그리고는 혼자서 히죽거리며 웃어보기도 하고 행여나 식구들이 보면 안 되겠다는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책을 덮고 남은 일을 마쳤다.

그 책은 나의 보잘것없는 문집인 '여기에 사랑을 심으리라(1987)'라는 제하의 첫 수필집이었다. 불현 듯 저 책장에 있는 책들은 분명 저자의 삶의 진액(?)이 드리워져 있을진 데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책을 대해야 할까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갔다.

무엇보다도 정성을 드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점이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생각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별로 얻는 것이 없다. 우리가 한권의 책을 읽어도 남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책의 내용이 부실해서가 아니라 읽는 사람의 자세와 마음가짐이 감동을 넘어 자기 인생의 자양분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자기 인생을 목적도 의지도 없이 소일하듯 흘려 보내서는 수십년이 지나도 남는 것은 별로 없다. 무엇보다도 자기 인생을 보다 알차게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정성을 들이고 노고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런 사람에게 인생은 비로소 자신의 의미를 보여 줄 것이다.

다음으로는 책은 빨리 읽는 것이 주목적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책을 읽은 목적은 이해와 감동, 그리고 자신의 성장이다.

그러기에 가능한 한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어야만 행간이 보이고 자신의 현실에 대한 시사점들을 발견해 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도 빨리 사는 것이 목적은 아닐 것이다. 우리 삶은 시간을 흘려보내기 위한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시간을 의미있게 만들어가야 하는 능동적인 것이다. 오늘 하루야말로 내가 뭔가를 하고 의미를 남길 수 있는 유일한 날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아울러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책을 재미있게 읽듯이 일도 좋아하는 일을 해야 삶이 즐겁다.

마찬가지로 인생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호감이 가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행운이고 즐거움이 될 것이다.

끝으로 책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들이 일목요연하게 목차로 정리되어있다. 우리 인생도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자기 삶의 어느 부분에 어떤 일을 하면서 무엇을 목표로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 자신의 로드맵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 이렇게 책을 대하는 것과 우리의 인생은 비슷한 점이 있다. 정성을 드린다는 점, 서두르지 않아야 한다는 점, 좋아하는 일을 선택해야 한다는 점,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보아야 한다는 점 등 아니 이외에도 많은 것들이 있을 수 있다. 이제부터라도 자기나름대로의 인생의 로드맵을 가지고 하루하루의 삶을 진지하게 서두르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 조심스럽게 내딛어야 한다. 인생의 마침표를 찍은 그 순간까지 말이외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