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정문섭 논설위원

일선 기자 시절 검사들과 자주 어울렸던 편이다. 그들이 좋아하는 폭탄주도 마시고, 가족끼리 어울려 함께 놀러간 적도 있었다.

그러다 서로의 근무지가 바뀌면 자연스럽게 소원해졌다. 그런데 헤어진 검사들부터 먼저 전화 올 때가 꼭 한 번 있다. 변호사 개업을 할 때다.

검사는 갑의 입장이고, 변호사는 을의 입장이다. 갑이라는 입장은 아쉬울 게 없다.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20대부터 갑의 입장에만 서 있다보니 브레이크 없는 검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지도 모른다.

그러나 검사라고 나쁜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1964년 인혁당 사건 기소압력에 항의하여 사직한 이용훈 검사, 1999년 정치검찰을 비판하고 사직한 심재륜 검사, 2009년 PD수첩 기소 요구에 응할 수 없어 사직한 임수빈 검사 등 올곧은 검사들도 수도 없이 많았다.

문제는 무소불위의 권력만 향유하려 드는 깜부기 무리들이다.

사건 청탁을 받는 조건으로 벤츠를 제공받고, 명품 백 값을 지불하라며 당당히 문자까지 보내는 파렴치들이다.

검찰은 공소를 제기하고 그것을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현재의 대한민국 검찰은 수사권,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 공소권, 영장청구권 등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한다.

그런 검찰이 '벤츠 여검사' 의혹과 맞물려 검사와 검찰공무원 비리에 대해 독립적 수사권한을 달라고 공공연하게 목청을 높이는 경찰의 거센 요구에 사면초가의 상황을 맞고 있다.

'스폰서 검사', '그랜저 검사' 에 이어 벤츠 여검사가 등장하자 한 중견 여검사는 검찰에 쓴 소리를 남기고 사직서를 제출했다.

대구지검 백혜련 수석검사는 지난 21일 검찰 내부 통신망에 올린 글을 통해 "최근 몇 년간 검찰의 모습은 국민들이 볼 때 결코 정의롭지도,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을 지키지도 않았고 오히려 검사라는 사실이 부끄러운 적이 많았다"고 술회했다.

백 검사의 사표 제출과 벤츠 여검사 사태를 계기로 검찰도 새롭게 변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지난 29일 국회에서는 '총리실 검경 수사권 조정안' 토론을 둘러싸고 검찰과 경찰이 팽팽한 접전을 벌였다.

내사 진행을 인정하라는 경찰과 인권 침해를 막으려면 검찰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는 검찰.

검사나 검찰 관련 비리 수사에 대한 경찰 독립수사 권한을 주면 총리실의 조정안도 수용하겠다는 일부 경찰들의 제안에 검찰은 이는 '모든 사건은 검찰이 수사 지휘한다.'는 법률에도 위배된다고 맞받아쳤다.

'경찰은 검찰비리 죽도록 수사하고 싶다.' 검찰에 얼마나 사무쳤으면 토론회장에 참석한 한 경찰관이 스마트폰에 이런 글까지 담았을까. 권력도 윤회한다.

광복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시절에는 경찰 권력이 검찰을 압도할 정도로 막강했었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정치와 더불어 당시 안기부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다. 그러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보안사의 권력은 한때 하늘을 찌르는 듯했다.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MB정부를 거치며 검찰은 상종가를 구가하고 있지만 이들 권력도 언젠가는 추풍낙엽이 될 수 있다. 검찰의 권력은 검사들 스스로가 위태롭게 만들어가고 있다.

가수 최희준의 회전의자 노래가 생각난다. "빙글빙글 도는 의자 회전의자에 임자가 따로 있나 앉으면 주인이지,"

권력의 의자는 국민 외에는 그 누구도 참 주인이 될 수 없다.존재의 이유를 망각한 일부 무리들 때문에 세상은 요지경 속을 헤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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