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김오상 영동경찰서 경무계장

공자는 나이 마흔을 미혹되지 않는 '불혹'이라 했고, 나이 쉰을 하늘의 뜻을 아는 '지천명(知天命)'이라 했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가면 육체는 늙고 시들어가지만 인간 내면의 세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깊이를 더해간다.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서럽지만은 않은 것은 바로 이런 내면의 숙성이 육체의 몰락을 보상해 주기 때문이다.

불혹을 지나 이제 하늘의 명을 안다는 지천명의 나이를 바라보니 또 다른 의구심이 생긴다. 하늘이 내린 명이란 무엇인가? 또 그것을 어떻게 파악해야 할 것인가?

쉰이라는 수치에는 도달했지만 여전히 지천명은 오리무중이다. 왜 공자는 생의 절반이 훌쩍 넘은 쉰이 돼서야 하늘의 명을 안다고 했을까?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삶이 무엇인가 묻는다면 나는 서슴치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삶'을 꼽는다.

이런 사람들이 가장 부럽다. 과연 이보다 더 신나는 삶이 있을까?

지천명이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거나,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삶, 자신이 사랑하는, 혹은 소중하게 생각하는 일에 생을 걸고 살아가고 있다면 사회적 성공여부와 관계없이 이미 지천명을 이룬 사람일 것이다.

그러니 쉰이 지천명이라는 공자의 말씀은 나이가 쉰에 이르는 동안 충실히 자신이 원하는 삶을 가꾸려 노력해 왔다면,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바로 하늘의 명임을 인지하고 다시 새로운 것을 찾으려 갈등하지 말고 지금의 일을 더욱 사랑하라는 말 아닌가?

그래서 공자는 지천명을 반생이 훌쩍 넘긴 쉰에 이르러야 깨닫는다고 했나보다.

삶이란 이해되지 않는 일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 사이의 관계는 언제나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이나 상황을 만났을 때, 화내거나 비난하기 앞서 한 번쯤 여유를 갖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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