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주연 서부신협 상무

지난 겨울이었다. 추운 날씨 속에 꼬마 여자 아이와 부모님으로 보이는 부부가 신협 출입문을 열고 들어섰다.

창구 직원이 인사를 하며 맞이했는데도 그 부부는 창구만을 바라볼뿐 말이 없었다.

담당직원에게 "대출돼요?" 라고 말문을 연 것은 딸로 보이는 아이였다. 어른들의 어색함과 아이의 당당함에 놀란 직원들은 잠시 후에야 아이의 부모님이 어딘가 불편하다는 것을 예감할 수 있었다.

아이로부터 부모님이 모두 청각장애인이며, 대출상담을 받으러 왔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대출 담당 직원은 필답으로 '청주 시내 시장과 골목에서 와플이랑 국화빵 장사를 하고 있으며, 새 기계와 자동차 구입을 위한 자금이 필요하다'는 것을 듣게됐다. 두 부부는 기대에 찬 표정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종이에 적었다.

이에 직원은 먼저 대출이 가능한지에 대해 상담을 시작했다.

수화로 상담 내용을 부모님께 전하는 아이의 당당한 모습에서 '반드시 대출을 받아 원하시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해 드리고 싶다'는 결의가 번득여 참으로 대견하고, 가슴 한켠이 찡해오는 것을 느꼈다.

상담 결과 이들 부부에게는 무등록 유점포에 해당하는 '햇살론' 대출과 집을 담보로한 '담보대출'이 가능했다.

그러나 대출 시기와 금리 등을 고려해 보증재단의 보증서를 필요로하는 햇살론 보다는 부동산 담보대출이 유리할 것같아 추천했다.

1시간이 넘는 긴 상담을 마친 후 돌아가는 부부의 모습에서는 우리 신협을 들어설 때의 어색함과 불안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세 가족이 무엇인가 희망의 끈을 다시 잡은 듯이 환하고 밝은 모습이었다. 다음날 밝은 모습으로 다시 방문한 부부의 얼굴에는 수줍은 미소가 가득했고, 손에는 전날 알려준 대출서류가 빠짐없이 들려있었다.

이들은 담당 직원의 도움으로 대출서류 작성을 마쳤고, 즉시 대출을 받아 원하던 사업을 시작하게됐다.

이들 부부는 우리 신협에 대출상담을 받으러 오기까지 청주 시내 시중은행을 세 곳이나 들렀다고 한다.

아주머니는 은행마다 대출에 필요한 금액을 쪽지에 적어 대출 담당자에게 보여줬지만 모두 거절당했고, 안되는 이유에 대한 설명도 들을 수 없었다고 한다.

섣부른 추측이지만 정상인 보다는 조금 더 불편한 장애를 가진 분들과의 상담시간이 길어져 번거롭고 귀찮았을 것이고, 장애인은 자력에 의한 상환능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선입견에서 계속 거절을 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법과 규정 어디에도 장애를 가진 분들에게 대출시 차별을 주도록 하는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천문학적인 마케팅비용으로 세련된 외양과 인간적인 모습으로 엄청난 편익을 제공할 것 같은 대형 시중은행들의 이미지와 현실의 너무 다른 모습에 가슴이 답답했다.

장애를 가진 분들을 비롯한 우리 사회 소외계층에 대한 금융기관의 진정한 배려가 무엇인지를 금융인들 모두가 깊게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신협의 실무책임자로 일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보람은 역시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대출'을 통해 다시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다.

지난 1월에 대출을 받은 이들 장애인 부부의 근황은 어떨까? 기계와 차를 새로 구입해 열심히 뛴 결과 장사가 잘된다고 한다.

간혹 안부를 전하면 늘 '고맙다'는 문자도 잊지 않는다. 5일장을 따라다니며 장사하느라 바쁘지만 이자는 한번도 연체를 한 적이 없다.

이들 부부를 보며 서민금융기관인 우리 신협이야말로 양극화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람을 위한 금융의 꽃'이 되어야 함을, 오늘도 현장에서 자부심과 그 책무를 함께 느낀다.

또 다시 찾아온 겨울. 제 키보다 큰 신협 출입문을 가녀린 팔로 힘것 밀치며 들어섰던 그 꼬마 손님의 당당하고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선방(禪房)의 죽비가 되어 오늘도 나를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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