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정문섭 〈논설위원〉

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대한 디도스 공격 사건으로 정치권이 발칵 뒤집혔다.

범행을 모의한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 수행비서 공 모씨는 자신이 단독으로 한 범행이라고 진술하고 있으나 이를 곧이곧대로 믿을 국민은 없다.

범행 성공 직후 그는 박희태 국회의장의 전 의전비서관 김 모(30)씨 등과 수차례 통화한 사실이 드러났다.

경찰에 긴급체포 되기 전 지인들과 가진 술자리에서도 그는 "내가 한 일이 아니다"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소위 몸통으로 보이는 윗선의 책임자들은 꼬리만 감춘 채 온통 발뺌으로 일관하고 있다.

최구식 의원은 "자신은 관계가 없으며 관련 사실이 드러나면 의원직을 사퇴하겠다"는 말을 했다.

역시 비서가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박희태 국회의장 측은 아예 공식 답변도 내놓지 않고 있다. 집권여당의 책임자인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도 "비서가 한 것이지 한나라당과 무관하다"는 투의 발언을 해 국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나경원을 제외한 남경필·원희룡·유승민 최고위원이 7일 홍준표 대표의 사퇴 및 당 쇄신을 요구하며 최고위원직을 동반 사퇴했다. 홍 대표는 여전히 자리에 연연하는 모습이다. 끝까지 국회의원 공천권을 행사하려 한다는 비난도 쏟아지고 있다.

이번 사태와 관련 가장 가공할 일은 PD수첩에 보도된 것처럼 관권이 개입된 정황이 여기저기서 포착된 사실이다.

투표율을 줄이기 위해 투표장소가 무더기로 바뀌고, 투표 안내인은 나와 있지 않고, 선관위 홈피에는 투표소 위치화면이 열리지 않고...

한 네티즌은 선관위의 투표소 홈피가 열리지 않은 것을 내부자의 소행으로, 투표소 변경은 누군가가 지시했을, 그리고 이 사건이 장기적으로 계획되었을 가능성을 지적했다.

만에 하나 누군가의 지시에 의해 선관위가 이렇게 움직인 것이라면 이는 헌법기관을 테러하고, 국정을 문란 시킨 심각한 사안이 될 수 있다.

이런 일들이 계속해서 방치된다면 투표 조작에 이어 개표조작도 하지 못하라는 법이 없다. 당연히 이전 선거도 공명선거로 치러졌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품게 한다.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든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는데 여당대표, 국무총리, 대통령 어느 누구 하나 사과하는 사람이 없다.

정부도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겠다는 확실한 의지도 보이지 않고 있다.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6일 "선관위 테러를 사주한 배후세력은 진실을 감추려 발버둥을 쳐도 반드시 드러나기 마련"이라며 "국민의 심판을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삼성생명 박근희 사장은 6일 오후 모교인 청주대에서 가진 열정락서 토크 콘서트에 강연자로 참석한 자리에서 후배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삶은 갈등의 연속이다. 갈등은 상식과 순리라는 잣대를 가지고 풀어가야 한다. 상식은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이다. 이 수준에서 판단을 내리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이를 벗어나면 몰상식이 된다."

정권도 상식이라는 범주 내에서 잡아야지 몰상식한 방법으로 잡으면 국민이 용납하지 않는다.

헌법 8조 4항에는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래저래 한나라당은 새롭게 창당해야 할 사면초가의 국면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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