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위원칼럼] 박미영 서부종합사회복지관장

해마다 12월이 되면 다시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생각과 새해를 준비해야 한다는 압박감마저 느껴져 늘상 마음이 분주해지곤 한다.

그렇다고 특별히 무언가를 마무리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도, 새해를 준비하기 위해 실천하는 것도 없으면서 괜스레 마음만 서둘러 앞서 가서 허공에 뜬 풍선처럼 연말을 보내곤 했었다.

올 해도 어김없이 12월이 되었다. 사업 평가와 신년도 사업 계획 준비로 한창 분주하다. 사무실 불빛은 늦도록 꺼질 줄을 모르고 폭주하는 일감 속에 묻혀 정신없이 보내고 있다.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일주일이, 한 달이, 또 한 해가 어떻게 가는지 나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그렇게 세월의 흐름을 바삐 좇아가며 살아간다.

때문에 연말이 되면 예민해져서 여유를 잃어버리고 너그러움을 놓쳐 버리기 일수다. 여유와 너그러움, 넉넉함을 잃어버렸기에 타인에 대한 배려도, 이웃에 대한 관심도 기울이지 못하고 오직 앞만 보고 또 그렇게 달려가고 있다.

성공과 성장의 가치가 우선시 되는 사회 문화 속에서 어쩌면 배려와 관심,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삶의 가치들은 사치품처럼 혹은 성장의 방해물처럼 취급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달려가고 있는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잠시 멈추어 돌아 보아야할 시기가 바로 지금이 아닐까?

12월을 '비움달'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한 해를 다 지내고 난 마지막 달이기에 모든 계획을 이루고, 모든 시간을 보내고, 모든 과정을 품은 '가득 채움'이 더 어울릴 듯 한데 어찌하여 '비움달'이라고 했을까?

그런데 가만 보니 필히 12월은 '비움달'이 되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움켜 쥔 주먹을 풀어야만 내가 원하는 것을 쥘 수 있고, 그릇을 비워내야만 신선한 음식을 담을 수 있다. 비워 내지 않으면 더 이상 아무것도 채울 수가 없기에 한 해의 마지막인 12월에는 지난 것들을 비워 내는 일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새해에 새로운 것들을 채워 나갈 수가 있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12월은 지난 한 해를 찬찬히 들여다보며 비워 내야 할 일들과 비워내야 할 감정을 가려내어 비워내는 시간으로 채워야 하고 그런 12월이 '비움달'인 것은 참으로 지혜로운 이름이다.

이 비움달에 우리가 가장 먼저 비워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끝없이 나를 채우는 욕심과 이기심이 아닐까!

다른 사람의 권리를 빼앗고서라도 나의 소유를 확장시키고자 했던 그릇된 욕심과 이기심을 비우고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이웃에 대한 관심이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켜 나갈 수 있는지 그 희망을 배우고 채우길 원한다.

자신의 성장과 스펙을 위해 사회적 불의함을 모른 척 달려가던 발길도 비워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깨닫고 불의한 사회적 모순을 바꿔 나가기 위한 사회적 참여와 행동으로 채워 나갈 수 있기를 원한다.

한 사람이 가지는 작은 정성과 사랑, 그리고 관심어린 사회 참여가 다른 한 사람을 변화시키고 그 두 사람이 또 다른 두 사람을 변화시킨다. 그리고 네 사람이 다른 네사람을, 다시 여덟 사람을, 그 여덟 사람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가져올 수 있으며 그렇게 우리 사회는 사회적 정의와 공동체 문화를 이루어 나갈 수 있다.

올 12월 '비움달'에는 비울 것을 비워 내어 신선하고 바른 삶의 가치들로 새롭게 채울 준비를 해야겠다.

비움을 통하여 채움을 허락하는 시간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시간들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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