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전원 前 청주교육장

우리의 일상생활은 배려가 아닌 게 없다.

아침 식탁에서 할머니께 먼저 드시라고 집어 드리는 것에서부터 손윗사람에게 자리 양보하는 일, 차례대로 질서 지키는 일, 교통신호 잘 지키는 일, 버려진 쓰레기 치우는 일 등에 이르기까지 누군가를 보살펴주려고 자상하게 마음을 써주는 것이면 다 배려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이 그대로 행동으로 옮겨져 습관화 되어 배려하는 생활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데도 우리에겐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하다며 각성을 촉구하는 이들이 많다.

이는 그들이 다른 차원의 배려하는 생활 실천을 기대하는 것이리라.

며칠 전, 난소암 등으로 세 차례의 수술을 받은 여류소설가 손장순 씨가 자기는 40여 년 전에 구입한 전기스토브를 사용하면서도 가난한 문학도들을 위해 서울대에 장학금 20억 원을 기부했을 때도 어려운 배려의 실천이라며 감동과 감사와 칭송이 이어졌었다.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이 결손가정 아이들을 찾아 바이올린 개인 레슨을 해준 일과 청각장애 야구단을 찾아 격려하며 개별지도를 해준 야구선수 추신수 씨의 미담 등이 돋보이는 것은 실천하기 어려운 여건 속에서 기대 이상의 배려하는 마음을 베풀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말이 서툰 다문화 외국인에게 한글을 가르쳐 주는 이웃집 할아버지, 시각장애를 배려해서 그를 남편으로 맞아 평생을 그의 지팡이가 되어준 강영우 백악관 정책보좌관 부인 석은옥 씨, 팔다리가 하나도 없이 출생한 이구원 군을 배려해서 그의 손발이 되어 함께 생활하고 있는 선교수도회공동체 등은 하나같이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것 뿐이라며 공을 사양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일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처지에 있으면서도 앞장서지 않고 슬그머니 뒤로 물러서거나 아예 나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며 돌아서거나 지나쳐버리는 인사가 있어 차원 높은 배려가 요청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최근에 드러난 장애학생 성폭행이 그렇고, 30 년 만에 무죄로 방면된 가난한 모범가장의 존속살인혐의 누명이 그랬으며, 평생을 종처럼 부려먹다가 늙어서 쓸모가 없으니까 그동안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준 것이 퇴직금이었다며 빈손으로 쫓아낸 업주 등이 그렇다.

배려하는 마음이 눈곱만큼이라도 있었더라면 거기까지는 가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다.

어른과 부모님께 배려를 실천하면 예의바른 효자가 되지만, 모른 체하면 후레자식의 패륜아가 된다.

사회와 직장에서의 인간관계에 배려하면 존경받는 지도자가 되지만, 자기중심적이면 불신의 패배자가 된다.

국제관계도 마찬가지여서 나라마다 그런 일을 하는 대사가 있다.

중용도 좋겠지만 배려의 기본만도 못하니 발상의 전환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인사 잘해서 뺌 맞는 일 없단다. 누군가에게 배려를 베풀면 자신은 물론이고 받는 이도 즐거워한다.

이런 배려가 생활화 되면 내가 먼저 손 내미니 원수가 친구 되고, 아랫사람이 존경하니 윗사람이 아껴주고, 배배꼬인 인생도 사르르 풀어지고, 화 못 참아 저승 구경 가다가도 짐 벗고 내려오고, 물로 채운 허기진 배는 기쁨으로 만족하고, 적막강산 방랑자는 광명천지 길라잡이가 된다.

신혼부부가 배려하면 허니문 파경 간데없고, 경쟁에서 배려하면 실속은 내게 오고, 약자를 배려하면 그 덕에 큰일하고, 흙을 배려하면 풍년 들고, 하늘을 배려하면 소원 풀고, 미물을 배려하면 재앙 막아주고, 미움을 배려하면 사랑이 싹트고, 죽음을 배려하면 죽은 이의 여명이 내게 더해진단다.

이렇게 좋은 배려가 생각보다 쉽게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고 있다. 이는 마음가짐의 문제다.

배려의 기초는 먼저 상대방을 이해하고, 양보하며, 봉사하는 마음을 다지는데 있다.

이 세 가지 마음씨 중 어느 하나만 가지고 있어도 배려하는 생활의 실천자로서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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