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눈]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기원전 중국 전한시대 사마 천(司馬遷)을 만나 보자. 아버지 사마 담(談)에 이은 역사가다. 그는 오랑캐에 포로가 된 이릉(伊陵)을 두둔하다 한 무제로부터 궁형(宮刑)의 치욕을 당했지만 자살은 구우일모(九牛一毛)로 여기고 삶의 의욕을 불살랐다. 스스로 정한 세 가지 목표가 그의 인생역전 드라마 연출에 한 몫 했다. 첫째는 입공(立功), 명성을 얻는 일이고 둘째는 입언(立言), 자신의 철학과 사상을 글로 표현해 책을 펴내는 일이고 마지막은 입덕(立德), 덕을 실천하는 것이다. 삼립 가운데 사마 천은 특히 입언을 한 평생의 책무로 여기고 철저한 준비를 통해 실천했다. 그 결과가 중국 최초의 통사, <사기(史記)>다.

글자가 만들어진 이래 수많은 사람들은 입언을 다퉈 실천하기라도 하듯 철학이든, 주변에 흩어진 정보이든, 자료이든, 지식이든, 지혜이든 등등 각종 생활의 편린들을 엮어냈다.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책이 탄생하고 있다. 인쇄문화의 발달로 동시에 대량으로 책이 출간되기도 하고 인터넷의 발달로 전자책 이용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출판과 독서환경이 참으로 좋아졌다 할 수 있다. 책의 생명은 읽히는 것에 있다. 서점으로 발길을 돌려 보자.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서적 때문에 신간 코너는 갈 때마다 책들이 바뀐다. 지난 번 진열됐던 일부 신간들은 어디로 갔을까? 다 팔린 것일까? 천만의 말씀. 판매실적이 부진한 신간들은 곧바로 시선이 멀어지는 책장으로 옮겨진다. 선택되기를 학수고대하다 자칫 고전(?)으로 전락하는 운명을 맡는다. 한 켠 구석으로 밀린 책들은 제대로 숨조차 쉴 수 없다. 누구도 찾지 않고 햇살도 보지 못한 채 소리 없이 죽어간다. 이유는 둘 중의 하나. 읽을 만한 가치가 없거나 사람들이 책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채 선택과 판단의 오류를 범하기 때문이다. 요즘 출판기념회가 부쩍 늘었다. 그 것도 아주 요란하게 한다. 하지만 시선은 곱지 않다. 많은 언론 매체들은 소나 개나 다 출판기념회를 한다며 비아냥댄다. 책이 읽히기는커녕 소장 가치조차 극히 낮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니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이장폐천(以掌蔽天)의 속셈이 더 큰 이유다.

자신의 홍보와 정치자금 마련 등등. 대부분 자신의 삶을 표현한 자서전. 허나 정치인에 대한 평가가 바닥인 분위기에서 그 자서전에 얼마나 시선이 머무르겠는가? 턱도 없는 소리. 그저 안면과 정치적 이해관계 등으로 출간을 축하하고 한 권을 사주지만 대부분 승용차 뒤 켠 등에 이리저리 내돌리다 결국 죽음으로 내 몬다. 정치인들이여! 유익한 책을 썼다고 착각하지 말길… 당신들은 인품이나 영향력이 있어 관심이 집중되는 인간도 아니고 존경받을 만한 학자나 문학가는 더 더욱 아니다. 그저 깃대 잘 꼽고 줄 잘 서 행운을 잡거나 잡으려는 政治의 의미조차 무시하는 사람이다.

책을 출판하는 것은 상상력을 동원하고 생각나기 과정을 거쳐야하기 때문에 저자 자신에겐 여하튼 뿌듯하고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배려 없이 탄생시킨 이른바 쓰레기 더미 때문에 우리들이 양서를 선택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닌가? 성인 35%가 일 년에 한 권도 읽지 않는 우리 독서 실태를 더 부추기지 말자. 30년생 나무 한 그루에서 A4 용지 1만장이 생산된다고 한다. 어림잡아 A4 용지로 200 쪽짜리 책 3천권을 출간하면 30년 생 나무 30 그루가 없어진다. 평균적으로 20~30년 생 나무 한 그루는 1년 동안 1.8톤 정도의 산소를 뿜어낸다고 한다. 이는 성인 7명이 1년 동안 소비할 수 있는 산소량이다. 쓸데없이 읽히지도 않는 책을 펴내 자원을 낭비하고 환경을 파괴하지 말라. 신선한 산소를 마실 수 있는 권리를 더 이상 빼앗지 말라. 立功과 立德의 실천이 立言의 선결 조건임을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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