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정문섭 논설위원

90대로 보이는 백발의 노부부가 서울 충정로 구세군 빌딩을 찾아와 1억 원짜리 수표 2장인 2억 원을 기부했다.

83년 한국 구세군이 생긴 이래 개인 기부금으로는 역사상 최고의 액수였다.

2년 전 1억 원을 기부했다는 이 부부는 "구세군에 와서 기부를 해야 마음에 기쁨이 있다"면서 이번에 2년 치를 한꺼번에 기부한 것이다.

일요일인 지난 4일 서울 명동에서는 60대 초반의 노신사가 구세군 냄비에 1억1천만 원짜리 수표 한 장을 넣고 사라졌다.

83년 이후 한국 구세군 역사상 거리에서 들어온 단일 모금액으로는 이 역시 최고의 금액이라고 한다.

전북 전주에서는 '얼굴 없는 천사'의 12번째 선행이 지역사회를 훈훈하게 하고 있다.

40대로만 알려진 이 남자는 2000년부터 해마다 성탄절과 연말을 전후해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씩 모두 1억 9천700여만 원을 기부했지만 그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전주시는 그의 선행을 기리는 뜻으로 지난해 노송동 주민센터 앞에 '얼굴 없는 천사 표지석'까지 세웠다.

올해도 그는 동사무소 인근 세탁소 앞에 저금통과 현금뭉치를 두고 갔다.

이번에도 그는 24만 2100원이 들은 돼지저금통장과 5만 원 권 다발 5천만 원이 든 현금뭉치와 함께 상자에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 달라"는 메모가 남겨 있었다고 한다.

이밖에 충북 제천과 강원도 횡성, 경남 창원, 부산 등지에서 이름을 밝히지 않고 쌀이나 현금을 몰래 놓고 사라지는 얼굴 없는 천사들의 선행들이 세밑 사회를 더욱 훈훈하게 달구고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take and take, take and give, give and take, give and give라는 4단계 과정을 거치며 인격적인 성장을 한다.

이중 첫 번째인 take and take는 '주지는 않고 받기만 하는' 가장 원시적인 삶의 형태이다.

성인이 되기 이전의 우리들은 어린 시절 대부분 이 단계를 거쳐 자립할 수 있는 토대와 기반을 구축했다. 부모로부터 고귀한 생명을 물려받고도 우유를 달라, 밥을 달라고 하는 의존적인 삶을 벗어나지 못했다.

두 번째는 take and give의 단계로 '주고받는' 삶에 해당된다. 이 삶 역시 내가 먼저 베풀기보다 남에게 받은 만큼만 돌려주겠다는 지극히 이기주의적인 사고방식이 저변에 깔려 있다.

반면 이보다 한 단계 더 발전한 give and take는 '먼저 주고 다음에 받는' 삶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상대에게 먼저 배려하는 삶을 처음으로 실천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생에서 무엇보다도 가장 멋지고, 가장 성공한 모습은 give and give의 단계로 '주고 또 주는' 삶이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의 말처럼 선행을 베풀고도 남에게 선행을 베푼 사실조차 드러내지 않는 숭고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세상에는 얼굴 없는 천사들이 의외로 많다.

앞서 인용한 사례처럼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이름도 밝히지 않은 채 묵묵히 참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람들 덕분에 사회에는 인정이 넘치고, 삶은 풍요로워지면서 살맛나는 세상이 펼쳐지는 것이다.

어둠속 촛불이 되어 세상을 밝게 비추는 얼굴 없는 천사들 덕분에 삼천리금수강산 대한민국은 그래도 살기 좋은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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