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조승희 前 언론인

동구밖 한적한 시골길. 소달구지가 덜컹대며 가던 길. 개구쟁이 아이들이 누렁이와 달리기 하던 길. 때론 뽀얀 먼지일고 때론 진흙탕이 되던 엉망진창 길. 그러나 군에 갔던 아들이 올 땐 어머니가 맨발로 뛰어나갔던 길. 이제는 시(詩)속의 길.

고향의 정과 향수가 물씬한 누런 황토길. 때론 조금은 천천히 가라고 불쑥 막아선 자갈길. 이름 모를 들풀과 들꽃들이 향기롭게 반겨 주는 길. 올래길 둘레길로 다시 태어난 길. 이 길 위에는 한가로워 여유롭고 다정하여 사랑스러움이 가득하다. 길의 주인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도시의 아스팔트 도로는 다르다. 덜컹대지도 않는다. 뽀얀 먼지도 없고 진흙탕도 없다. 더더욱 맨발로는 뛰어나올 수도 없다. 도로의 주인이 자동차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바뀐 주인을 위해 도로는 넓어졌다. 8차선, 6차선, 4차선에 뒷골목도 2차선이다.

옛 주인의 길은 명색만 갖춘 초라한 인도가 전부다. 도로위의 그밖에 모든 차선은 차량들로 넘쳐난다. 차량들이 점령한 도로위엔 온갖 사고의 위험만이 도사리고 있다. 그래도 차량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질주하고 경적을 울린다. 사람들은 알아서 피해 다니라고 한다. 도로위에서 차량들의 횡포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나 차량들의 횡포를 막을 수도 없다. 도로를 빼앗고 횡포를 부리고 있는 차량은 사람들의 머슴이기 때문이다. 머슴은 다루기 나름이다.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할 뿐이다. 곱게 다루면 얌전하고, 거칠게 다루면 난폭해진다. 영롱한 아침이슬도 뱀이 먹으면 독이 되고, 벌이 먹으면 꿀이 되듯이.

주인이 차선을 지키라면 지키고, 천천히 가라면 천천히 간다. 정지선에 서라면 선다. 양보하라면 양보한다. 그러나 주인이 술을 먹고 정신이 없다 싶으면 머슴도 정신을 잃는다. 그 후엔 브레이크는 물론 차선도 없고 신호등도 없다. 오직 달리고 달릴 뿐이다. 누구도 못 알아보고 치고 박고 넘어가 참혹한 사고로 이어진다. 처참할 뿐이다.

"더, 더,더,더,더, 더" 늦은 밤 시간 도로 복판에서 울려 퍼지는 파열음이다. 곧이어 음주운전자와 단속경찰관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진다. "딱 한잔 했다"는 운전자의 읍소에 음주측정기는 냉정하다. '면허정지' 아니면 '면허취소'에 형사처벌이다. 영락없다. 아침 출근길 노란 어깨띠를 두르고 도로에 서서 캠페인을 벌린다. "음주운전하지 맙시다."

음주 운전자들이 음주운전 단속에 적발되면 '재수 없어 걸렸다'고 한다. 그리고 용케 단속을 피한 경우에는 무용담이 된다. 그리고 또 핸들을 잡는다. 음주운전은 습관이다. 해본 사람이 꼭 한다. 그러나 언젠가는 무용담이 교도소 담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충북경실련에 따르면 지난 5년간 도내 공무원들의 비위건수 944건 중 '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한 건수가 523건으로 55.4%이다. '품위유지 의무' 위반 사유로는 음주운전의 비중이 제일 높았다고 한다. 더욱이 단순 음주운전뿐 아니고 음주교통사고 후 뺑소니, 무면허 음주운전 등 죄질도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

술을 먹고 운전을 한다는 것은 '나는 사고를 내겠다'고 작심한 것이다. 그 순간 생활필수품이었던 차량이 이웃의 생명을 빼앗는 흉기로 변한 것이다. 그래서 음주운전은 사회악이다. 음주교통사고는 한 사람의 삶은 물론 가정까지도 파괴한다. 이에따른 정신적 경제적 사회적 피해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밝은사회를 위해 공무원들이 모범을 보이자. 아니, 공무원이기 이전에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아빠로서 모범을 보이자.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고 했다. 어느 날 아이들이 "나도 아빠처럼 운전 할래요"라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대부분의 공무원들이 모범을 보이고는 있지만…. 새해엔 음주운전 난폭운전 안하는 사회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송구영신(送舊迎新).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