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조승희 前 언론인

"어서 오시게나." "어, 친구 아니야." "그러네, 새해 복 많이 받게." "고마워, 친구도 새해 복 많이 받고." "한데 아침 일찍 어디를 이렇게 가시나." "형님 댁에 좀 가네." "그래 새해 좋은 꿈 좀 꾸셨는가." "좋은 꿈, 꿈을 꾸긴 꿨는데 개꿈 같아서 원. 우리 같은 서민들이 꿈을 꾸면 얼마나 좋은 꿈을 꾸겠나. 안 그래 친구."

"무슨 꿈이었기에 그래." "아, 용을 잡아 보겠다고 초평저수지 물을 다 품었지 뭔가. 그런데 용은커녕 잉어도 못 잡고 겨우 미꾸리 몇 마리 만 잡았지 뭐야." "그랬어." "꿈이 그러니 올해도 별 볼일 없겠어. 들어오던 복도 미꾸리처럼 요리저리 빠져 나가지 않겠어. 올 운수가 사나울 것 같네."

"왜 그렇게 만 생각하나. 친구 말대로 미꾸리는 요리조리 잘 빠져 다니잖아. 올 한해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요리조리 잘 피해 큰일을 겪지 않을 운세이네. 길몽이야 길몽." "이 친구, 꿈보다 해몽이라더니, 친구 말대로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 친구야, 내 말을 믿게나." "친구가 뭐 점쟁이라도 되남."

"그럼, 점쟁이라고 믿게. 올 한해 좋은 일만 가득할 거야. 돈도 많이 벌겠고." "돈을 많이 벌어. 정말로 꿈같은 얘기하네. 무슨 수로 돈을 벌어 돈을. 장사를 하면 할수록 손해만 보고 있는데. 연말에 손에 쥔 것은 은행 빚뿐이었다네." "아니야, 올해는 장사가 잘될 걸세. 꿈에 물을 퍼냈던 초평저수지에 돈이 가득 찰 운세야. 그 대신 열심히 해야 되네."

"아 그러면 얼마나 좋겠나. 그런 대박은 언감생심 바라지도 않네. 그저 올 한해는 더도 바라지 않아. 장사나 잘되고 아들놈 취직이나 해서 집안 편안하면 되네. 올해는 허리 좀 쭉 펼 수 있을는지 원. 그게 올해의 바램 일세 그려." "친구의 새해 그같은 소박한 꿈은 꼭 이루어질 걸세."

"참, 그 친구 소식은 좀 들었나. 퇴직하고 고향에 들어가 황토 집 짓고 살던 친구 있잖아." "그 친구 얘기 못 들었는데. 왜, 무슨 일이 있었나." "그동안 시골생활에 흠뻑 빠졌었는데 두 달 전에 떠났네." "뭐야, 그 친구 건강했는데 무슨 일이야." "애들도 다 여의지 못했는데 그만 교통사고를 당했지 뭔가."

"아이고 그런 일이 있었어. 난 전혀 몰랐네." "친구도 늘 운전 조심하게." "남 걱정하시네. 업으로 하는 친구가 더욱 조심해야 하네." "고맙네. 여하튼 올 한해 건강하세." "그래 건강이 최고야. 건강해야 맛있는 음식도 먹고 친구들과 여행도 다니지.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는다고 했잖아. 자네도 건강 조심하게." "그럼. 나도 열심히 챙기네."

"그래야지. 나도 아직은 건강을 자신하지만, 우리도 이제는 건강을 돌볼 나이 아닌가." "이 친구, 무슨 나이 타령인가. 이제 몇이나 됐다고. 우린 아직 청춘이야 청춘." "뭐 청춘, 웃기시네. 마음뿐이지 몸은 아닐세 이 사람아." "이 사람 뭘 모르는군, 인생은 60부터라고 하잖나. 친구야."

"됐네, 하여튼 건강하고, 나 저 모퉁이에 세워주게. 저 집이 우리 형님 댁일세." "그래, 차비는 그만두고 잘 가게나 친구." "무슨 소리야. 새해부터 그러면 되나. 여기 있네." 친구가 급히 내리며 '쾅'하고 차문을 닫는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새해 새아침의 이른 새벽에 꿈을 꾸고 있었다.

구랍 28일 중부매일 1면. '내년엔 허리 펴는 세상으로'의 사진기사가 우리들의 시선을 고정시켰다. 찬바람이 몰아치는 시장거리. 폐 종이박스 가득 쌓인 허름한 손수레. 허리 굽은 할아버지의 힘겨운 발걸음이 담긴 한 컷 사진. 지난 한 해 동안 힘겹고 모질게 살아왔던 우리들의 자화상이었다.

새해 우리들의 소박한 꿈, "허리 좀 펴고 사는 세상"을 이루어줄 새해 새아침이 우리들의 가슴속에서 밝았다. 희망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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