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보환·단양담당

민주주의자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세상을 떠났다.

뇌정맥 혈전증에 뇌출혈까지 겹치면서 의료진도 손을 쓸 수 없었다고 한다.

지난해 12월 초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해 입원사실이 알려졌고 숨지기 하루 전 위독하다는 내용이 인터넷·스마트폰으로 퍼져나갔다. 그는 서울 도봉구에서 3선을 기록하고 장관, 열린우리당 의장을 지냈지만 18대 총선에서 떨어졌다.

전문가 그룹은 국정지도자 감으로 최고라고 평가하지만 현실에서는 항상 2% 부족한 정치인이었다. 1960년대 학생운동, 70·80년대 청년운동을 하면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5년간 투옥됐다.

군사정부 시절 물고문·전기고문을 받았고 초인적인 의지로 그 상황을 세계에 알렸다. 1995년 민주당에 입당하면서 현실정치에 참여했고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당·정의 요직을 지냈다.

그러나 자신의 민주화운동 경력을 자격증처럼 활용하는 사람들과 반대되는 삶을 살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약속을 뒤집자 "계급장 떼고 논쟁하자"는 말을 남겼다.

원내대표 시절 이라크 파병에 반대했고 노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추진할 때 "나를 밟고 가라"며 맞섰다. 당시에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찬성한 뒤 대통령이 바뀐 요즘 반대하는 사람들과 대조적이다.

2002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이후 법정 한도보다 많은 후원금을 모집했다고 고백했다. 지난 2005년 쯤 열린우리당 의장으로 활동하던 그가 충주에 내려왔을 때 일이다. 한 시민이 지역에 병원을 짓는데 국비를 지원해달라고 건의하자 "우리당 보건복지위원회를 통해 관련 부서에 내용을 알아보겠다"는 답답한 말만 하고 돌아갔다. 그의 별세 소식에 대해 정파를 막론하고 다양한 매체, 인사들이 보여준 추모열기는 다분히 이례적이다.

진보·보수를 떠나 절차나 과정의 정당성, 원칙에 대한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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