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눈]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어느 신년회 자리. 각종 건배사가 난무하는 가운데 귀를 쫑긋하게 만든 건배사가 있었다. "세상을 사는데 3가지 금이 있습니다. 황금과 소금 그리고 지금 입니다. 이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은 황금도, 소금도 아닌, right now! 바로 지금! 입니다." 라고 힘차게 외친 한 여기자의 건배였다. 아직도 가슴 깊은 곳에서 생생하게 메아리치고 있다.

사고 팔 수 없고, 만지거나 볼 수 없고, 형체 없는 '지금'이 최고의 교환가치를 가진 황금과 흔하지만 생명의 필수요건인 소금보다 왜 더 소중하다는 것일까?

물론 그녀는 소중함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지만 분명 까닭이 있었다.

중국 당나라 임제의현(臨濟義玄)이라는 선승(禪僧)을 만나보자. '지금'의 중요성을 갈파한 성현으로 으뜸이다.

그는 자신의 어록 <임제록>에서 '수처작수(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 즉시현금(卽時現今) 갱무시절(更無時節)'라 했다.

'어느 곳에서든지 주인공이 되라. 서 있는 그 자리가 모두 진실하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노력하라. 다시는 이 같은 좋은 시절은 없다'는 뜻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 한낱 흔적에 지나지 않으며 미래 역시 아직 오지 않았으니 허무한 것이다.

과거는 흘러간 물과 같고 미래는 다가오지 않는 영원한 미래다. 오직 지금만 있을 뿐이다. 늘 '지금 여기'에 깨어 최선을 다 하라는 뜻이다.

법정 스님도 빠질 수 없다.

그는 추상명사에 불과한 미래에 집착해 사는 인간을 가리켜, 오지 않을 시간을 가불(假拂)해 미리 쓰는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미래 시간을 가불해 쓰니 지금은 어떻게 되겠는가? 늘 뒷전이다. 지금은 있으되 사용하지 않으니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다. 그는 '오늘을 마음껏 살고 있다면 내일의 걱정 근심을 가불해 쓸 이유가 어디 있는가' 라며 이 순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과거나 미래 쪽에 한눈을 팔면 현재의 삶이 소멸해 버린다'고 했다.

없는 것은 과거와 미래이고, 있는 것은 지금이니 있는 것에 충실하자는 뜻이다.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는 말 역시 '지금 여기'를 중히 여긴 것이다.

고대 로마 공화정 말기의 으뜸 시인 호라티우스도 '지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라틴어 시의 마지막에서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 가급적 내일이란 최소한만 믿어라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라 노래했다.

이 시의 구절 '카르페 디엠'은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에 등장하면서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 라는 명언이 됐다. 과거와 미래에 집착하니 걱정과 불안, 불행이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음을 지적하고 있다. 지금을 외면하지 말고 지금에 충실하자는 얘기다.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지금을 즐기지 못하고 허송하는 어리석음을 겪는 자들에 대한 경계라 할 수 있다.

기원전 유대교 성인들의 교훈을 채록한 <피르케이 아보트>에는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And if not now, when?)'라는 글귀가 실려 있다. 역시 지금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지금'에 충실하지 못하면서 무슨 배짱으로 미리 '미래'에 최선을 다 하려 하는가? 당치 않은 소리다. 지금을 버리고 미래를 맞을 수 없다는 의미다.

많은 사람들은 툭하면 과거를 회상하며 후회하거나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집착한다. 지금에 있으면서도 지금에 있음을 망각하고 살아간다. 물론 지금은 지금도 흘러간다. 어느새 과거가 되어 버린다. 허나 지금은 흐르는 물에 발을 씻는 순간이다. 최선을 다해 발을 씻으면 된다. 그 순간의 물은 잡을 수 있는 유용지물이다. 미래는 영원히 다가오지 않는다. 잡으려면 잡을수록 멀리 달아나는 무지개와 같다. 결코 오지 않는 미래를 미리 걱정하지 말자. 만약 온다면 그때 걱정하자. 과거와 미래의 노예가 되지 말고 '지금'의 주인이 되자. '지금'을 허비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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