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정문섭 논설위원

중국 하나라 계왕의 아들 태강은 정사는 돌보지 않고 사냥에만 몰두하다 결국 나라를 빼앗기고 쫓겨나는 신세가 된다.

그러자 태강의 다섯 형제는 나라를 망친 형을 원망하는 노래를 지어 부른다. 부끄러움, 죄스러움, 서러움, 답답함이 절절하게 묻어나는 노래였다.

이 중 막내 동생의 노래에 나오는 '낯이 뜨거워지고 부끄럽기 그지없음'이라는 대목에서 후안과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무치가 합쳐져서 탄생한 말이 후안무치(厚顔無恥)이다. 여기서 후안(厚顔)은 두꺼운 낯가죽을, 무치(無恥)는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얼굴이 두꺼워 염치나 체면도 없고 도무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을 빗댈 때 쓰는 말이다.

요즘 한국 정치권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정치인들이 판을 치고 있다.

얼굴은 분명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하는 말과 행동은 짐승과 다를 바 없으니 하는 말이다.

나라에 씻을 수 없을 잘못을 저지르고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자신을 합리화시키려하는 등 도대체가 책임의식이라고는 찾아볼 길이 없다. 권모술수를 써서 정계에 입문하고 어느 정도 목적도 달성했으니 이제는 사리사욕이나 채우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정치판이 이렇게 썩었으니 나라 꼴이 잘 될 턱이 없다.

지난해 한국투명성기구가 선정 발표한 2011년 '부패뉴스'에는 1위 '이 대통령 내곡동 사저 매입 논란', 2위 '부산저축은행 비리사건', 3위 '이 대통령 친인척 측근 비리'가 나란히 금 은 동메달을 석권했다.

4대강은 국민혈세 30조를 쏟아 부었으나 절반이상이 부실공사로 물이 샌다는 보도가 나오고 4대강 사업을 하던 주무부서는 업자를 상대로 뇌물수수를 하다 검찰조사를 받고 있다. 외무부 대사를 비롯한 고위직 공무원들은 주식시장에서 이권을 챙기느라 여념이 없다.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에만 신경을 쓰는 격이다.

검찰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대한 디도스 공격을 한나라당 국회의원 국회의장 비서들만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 지었다. 검

찰 특별수사팀은 최구식 전 한나라당 의원의 운전기사 공모 씨와 박희태 국회의장 의전비서인 김모 씨, 도박사이트 운영업체 직원 차모 씨 등 7명을 정보통신기반보호법과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기소하는 것으로 사건을 매듭지었다.

그러나 몸통이 없는 비서들이 사건을 일으켰을 것으로 믿을 국민은 아무도 없다. 디도스 공격이 일어나기 전 이들 사이에 거액의 돈이 오갔고 경찰 수사팀이 청와대에 수사 진행 상황을 면밀히 보고하는 등 청와대가 이번 사건에 개입됐다는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이번 사건은 4년 전의 일이다. 기억이 희미할 뿐만 아니라 그때 중요한 5개의 선거를 몇 달 간격으로 치렀다. 이 자리에서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당시 얘기를 하자면 저는 모르는 일이다."

해외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박희태 국회의장이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했다. 박 의장은 18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귀빈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서 소정의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검찰에서 죄를 밝혀내면 죄값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넘어가겠다는 심산이다. 박 의장은 국회의장직 사퇴와 정치적 책임에 대해서도 입을 열지 않았다. "사죄하는 마음으로 4월 총선에 불출마하겠다."는 발언도 이미 지난 7일 본인의 지역구인 경남 양산에서 선언했던 내용이다.

정치권의 후안무치 달인들을 지켜봐야 하는 국민들 속만 뒤집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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