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광섭 청주공예비엔날레 기획홍보 부장

아니 벌써, 임진년이 여기까지 왔나? 시무식을 한 게 엊그제였는데 사무실에 걸려있는 달력을 보니 설날이 코앞이다. 순간 나는 가슴이 먹먹해 지지 시작했다.

세월은 유수 같고 나의 일은 정처 없으며 마음은 불안하기까지 하니 도무지 일이 잡히지 않는다. 사람들은 어떤 순간을 인생의 전환점으로 삼고 싶을 때가 있다. 특별한 계기가 있을 때 이 같은 생각은 더욱 강렬해지게 마련이다.

사실 시작이라는 말은 지난 시간과 작별하는 것이 아니라 어제와 내일 사이에 끊임없이 펼쳐진 새로운 하루하루를 만나는 것이다. 우리 삶은 마치 시간으로 채워진 강물처럼 어디론가 흘러가는 것이 아닐까.

언제나 그랬지만 우리는 새 해, 새 아침의 해 뜨는 광경을 바라보면서 번잡하고 버거웠던 지난날의 슬픈 추억을 비우고 새로운 희망과 기쁨으로 충만하길 소망한다. 올 해는 반드시 나의 꿈이 이루어지리라.

문화도시, 문화복지로 충만한 세상을 만들고 가정과 사회가 화평하며 질병과 고통이 없는 멋진 신세계가 이루어지리라. 그리하여 막막하고 비루한 일상에 마침표를 찍고 모두가 하나로 물결치며, 모두가 햇살처럼 맑고 향기롭게 빛나리라.

그 속에서 나는 나만의 결을 만들고 세상 사람들 곁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면 좋겠다. 사람들과 마음을 주고받는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것이다. 방황과 불신과 갈등의 시대에 인간의 온기를 나눈다는 것은 물질로 계산할 수 없는 사랑의 보약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참으로 슬픈 것은 매년 초에는 이처럼 요란한 꿈을 꾸지만 나의 행실과 사회적 환경은 그리 녹록치 않다. 따뜻한 남편, 자상하고 인자한 아빠, 배려하고 베풀며 함께 나눔의 미학을 실천하는 사회인, 그리고 나만의 창조적 역량을 발휘하고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해 끝없이 담금질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저잣거리에 들어서는 순간 세상 탓부터 하기 시작한다.

올해는 더욱 그러하다. 나라 안팎으로 어수선하고 불안하며 갈등의 불씨들이 산재해 있어 한 치 앞도 예단할 수 없는 지경이다. 한반도는 그 어느 때보다 북한의 3대 세습과 주변국과의 이해관계로 긴장의 고삐를 누출 수 없다. 사월 총선이 끝나면 십이월 대선이 기다린다.

이번에도 지역주의와 포퓰리즘과 인정에 의한 선거가 된다면 이 나라는 말 그대로 희망이 없을 것이다. 가면 갈수록 조화와 상생의 미덕보다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할거주의가 사회 전반에 걸쳐 만연돼 있어 위기감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금융위기는 동방의 작은 나라 한국을 실험대 위에 올려놓고 있다.

우리는 가끔 길을 잃고서도 그 사실을 모를 때가 있다. 또 바른 길을 가고 있더라도 길을 잃은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도 있다. 정처 없고 몽매한 삶 속에서 방황하기도 하고 나의 일과 타인의 일 사이에 고립되기도 한다.

임진년 첫 달을 보내는 나의 마음이 이러하다. 새로운 희망, 새로운 꿈, 새로운 가치로 달려보자고 다짐한 게 엊그제인데 비루하고 막막하다. 우리의 삶에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내가 해야 할 일들의 우선순위를 다시 정리해야겠다.

나는 이런 세상을 꿈꾼다. 주민을 섬기고 주민들에게 희망을 안겨줄 수 있는, 청년인재를 양성하고 균형감 있는 글로벌 시각을 갖춘, 일자리 걱정하지 않고 내 재산과 내 가정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서로 사랑하고 조화로우며 새로운 에너지를 창출하고 미래가치에 투자할 수 있는, 발 닿는 곳마다 눈길 마주치는 곳마다 생명의 숲과 호흡하고 소통할 수 있는, 장애인 노인 여성 다문화가정 소외계층이 복지로 행복하고 복지로 아름다운, 디자인과 철학과 열정을 담은 도시공간을 만드는 지혜와 역량으로 가득한, 전통의 가치를 창조적인 문화로 발전시키고 문화예술로 행복한 도시를 만들 수 있는, 그리하여 지역 주민 개개인의 맞춤형 서비스를 통해 이 땅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희망의 곳간이고 세계 어떤 지역과 경쟁해도 부끄럽지 않은 사회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150만 충북의 자유로운 영혼들이 환상의 군무를 펼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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