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정문섭 논설위원

정지영 감독의 영화 '부러진 화살'이 24일 누적 관객 90여만 명을 돌파하면서 박스오피스 순위 2위에 올랐다.

'부러진 화살'은 재임용에서 탈락한 대학교수가 수년간 법정싸움을 벌이던 대학을 상대로 낸 항소심에서 패소 판결을 받자 담당 판사를 찾아가 석궁을 쏘아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던 '석궁 테러사건'을 토대로 만든 영화다. 이 영화가 제2의 '도가니'를 예고하면서 세인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사건의 내용이 5년 전 있었던 석궁사건을 소재로 한 실화라는 점과 이런 이야기들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면서 진실공방 등 논란을 부채질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건은 김 전 교수가 독학으로 익힌 법조문을 토대로 재판정에 나서는 것에서 시작된다. 변호사도 없이 '나 홀로 소송'을 걸었다가 패소한 그는 극심한 좌절감에 휩싸인다. 사법부가 돈과 로비에 놀아나 진실을 외면했다고 판단한 그는 마침내 복수를 결심하고 부장판사의 집을 찾아가 석궁을 쏜다.

이런 줄거리를 보면서 불공정했던 재판에 의문을 제기하는 영화감독의 의도에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빨려 들어가고 있다고 한다면 작의적인 해석이 될까. 재판은 사실게임이다. 설사 내 말이 진실이라고 해도 이를 뒷받침할 근거가 부족하면 재판은 패소한다. 필자 역시 금전문제로 소송을 건 전례가 있다. 빌려준 돈에 대한 차용증과 송금한 통장이 있으니 당연히 100% 이길 것으로 생각했으나 판결은 정반대로 내려졌다. 그때부터 필자도 이 땅에 사법부는 항상 살아있지 않다는 것을 체험했다.

'부러진 화살'은 이처럼 사법부로부터 정의가, 진실이 외면당하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해 본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가운데 흥행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이 사법부에 바라는 것은 정의를 실현해달라는 것이다. 법은 누구에게나 공정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담당 판사는 당시 법원 내부 게시판에 올린 글을 통해 "당사자를 배려하고 그의 입장에서 고민하면서 안타까워했음에도 그 반대로 편파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재판과 판결을 하였다는 평가에 대해 마음이 아플 뿐."이라고 술회했다.

부러진 화살을 보는 관객이 많다는 것은 사법부를 불신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판결에 앙심을 품고 담당판사를 찾아가 석궁으로 보복했다는 것은 법치국가에서는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나 "판결내용이 얼마나 억울했으면 교수가 담당판사를 찾아가 석궁을 쏘았을까?" 하면서 사람들은 심정적인 동의를 한다.

이 영화를 바탕으로 사법부를 비난하는 내용이 트위터를 통해 진실인 것처럼 비춰지자 사법부가 반발하고 있다는 보도다.

한 학자는 "영화는 사실의 진위를 밝힐 수 있는 도구가 아닌데도 사법부에 비판을 가하겠다는 과도한 의욕 때문에 더 중요한 정의의 문제를 혼란스럽게 만들어 버렸다."고도 했다. '부러진 화살'에 대한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사법부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을 대변해주었다는 사실에는 이론은 없는 듯하다. 영화 '도가니'에 이어 새해 벽두부터 '부러진 화살'이 인기를 끌고 있음은 사법부도 이제는 변해야 한다는 하인리히 법칙의 조짐으로 해석해야 옳다.

정지영 감독은 영화를 만들면서 이런 메시지를 던졌다.

"21세기 대한민국 사법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게 황당했다. 100년 전 프랑스에서 비슷하게 있었던 일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사실이 슬펐다."

사법부는 부러진 석궁까지 부러뜨리려고 할 때가 아니다. 이보다는 대다수 국민이 사법부를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처절한 자기성찰을 통해 소통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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