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정문섭 논설위원

영어에 '프레너미(Frenemy)'라는 단어가 있다. '친구(Friend)'와 '적(Enemies)'의 합성어다.

이 단어에는 냉전시대에 존재했던 적군과 아군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으며, 동맹국이 적국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프레너미'라는 용어를 가장 먼저 사용한 사람은 40세의 나이에 광고마케팅회사를 차린 WPP의 마틴 소렐회장이다.

한 광고회사의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있던 그는 철사와 플라스틱으로 쇼핑바구니를 만드는 'WPP(Wire and Plastic Product)라는 회사를 차렸다.

인수ㆍ합병(M&A)의 귀재인 그가 영국의 중소기업 사장에서 세계 최대 광고회사의 최고경영자(CEO)가 된 것은 프레너미의 관계를 잘 활용한 덕분이었다.

프레너미는 이처럼 글로벌 산업을 이끄는 기업 세계에서는 거대기업 간 '협력-경쟁관계'를 뜻하면서 변화무쌍한 기업환경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아날로그의 시대에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고.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되었다면 디지털 시대의 프레너미는 적과 친구관계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다.

4박5일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한 중국의 미래권력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부주석이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조 바이든 부통령, 힐러리 국무장관 등을 비롯한 미국의 권력들을 차례로 만나고 있다. LA 타임스는 시 부주석의 도착을 "프레너미(frenemy)가 왔다"고 보도했다.

이처럼 프레너미 관계는 기업뿐 아니라 국제관계, 조직, 개인에게도 두루 적용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IBM과 경쟁사인 동시에 협력사다. 세계 IT업계를 지배하고 있는 구글과 애플도 프레너미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든다. 이들은 MS에 맞서 MS윈도우와 MS오피스의 독과점 구조를 함께 풀어야 하는 동지이지만,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서로 치열한 싸움을 벌인다.

경쟁자와 협업자의 관계가 무너지고 있다. 적군과 아군의 개념이 무너지고, 업종의 구분도 애매모호한 시장이 전개되고 있다. 바로 '프레너미'가 펼치는 새로운 세상이다.

기업에서는 프레너미는 '상호의존적 경쟁관계'로도 쓰였다. 삼성전자와 애플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MS가 IBM과 손을 잡고 삼성전자와 소니가 전략적 제휴를 맺는 등 경쟁사이자 동시에 제휴사가 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기업 간 긴장관계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 시장에서는 이종 간 교합과 융합 등 프레너미의 관계가 끊임없이 나타난다. 이는 또 다른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결국 적과의 행복한 동침, 프레너미는 기업 경영에 새로운 국면을 열어주는 키워드임이 분명하다.

하루가 다르게 판도가 뒤바뀌는 복잡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이제 프레너미 관계는 간과할 수 없는 양상이 되고 있다,

미국의 경영컨설턴트 데본리는 그의 저서 '콜래보 경제학'에서 "오늘날 같은 프레너미 시대에는 협력이야말로 적극적인 방어이자 공격"이라고 주장했다.

애플의 CEO로 지난해 세상을 떠난 고 스티브 잡스는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며, 결국은 죽음이 삶을 변화시키게 된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삶의 끝인 죽음을 인식할 때 삶의 가치가 다시 평가되듯, 삶과 죽음을 넘나들 수 있어야 인생의 진정한 참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프레너미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친구와 적을 넘나드는 프레너미의 관계가 자유자재로 설정될 수 있을 때 개인도, 기업도, 국가조직도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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