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정문섭 논설위원

박희태 국회의장의 돈 봉투 사건 수사가 48일 만에 막을 내렸다.

고승덕 의원의 폭로로 시작된 이번 수사 결과는 역시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었다.

전달자인 안병용 서울시 은평갑 당협위원장은 구속했지만 지시자인 박희태 국회의장과 김효재 청와대수석, 재정·조직을 담당했던 조정만 국회의장 정책수석비서관은 정당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박 의장 전 비서 고명진씨와 돈봉투를 전달한 '뿔테남' 곽모씨, 선거캠프 회계담당자인 함모씨 등 실무자는 사법처리하지 않았다.

고승덕 의원 외에 돈봉투를 받은 다른 의원들의 명단도 밝히지 못했다.

고 의원과 비서진들은 당시 돈 봉투가 담긴 노란색 봉투가 쇼핑백에 가득 들어 있었다고 폭로했다.

검찰은 돈봉투를 전달한 이러한 정황을 알고도 이를 밝혀내지 못했다. 고 의원이 폭로한 내용에 대해서조차 제대로 수사가 되지 않은 것이다.

수사과정에서 조 수석비서관 가족계좌로 방위산업체가 입금한 1억 원의 돈에 대해서도 곁가지라며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검찰은 형평성의 원칙을 들어 지난달 31일 민주통합당 예비경선 돈 봉투 살포 혐의자에 대한 압수수색을 하다 초청장을 돌린 것으로 확인되면서 망신만 당했다.

민주통합당 신경민 대변인은 "이명박 새누리당 정권의 정치검찰에 대해 더 이상 어떤 기대도 할 수 없다는 점이 백일하에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돈봉투' 전달하라고 지시한 혐의로 구속됐던 안병용씨는 20일 재판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보석을 신청하면서 그는 다른 관련자와의 형평성 문제도 거론했다.

검찰은 전달자인 안씨를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구속했다.

반면에 박희태 의장과 김효재 전 청와대수석, 조정만 국회의장 정책수석비서관은 검찰수사가 시작되자 고 씨를 접촉하고, 해외순방 중이던 박 전 의장 측과 여러 차례 국제통화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등 증거인멸 시도를 했으나 모두 불구속기소했다.

안 씨가 불쾌하다고 주장하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대목이다.

박 의장의 사퇴를 불러온 고 씨는 검찰고백문에서 "이미 진실을 감추기에는 너무나 명백한 증거를 검찰이 가지고 있었다."고 털어놨었다.

이런 검찰이 노란색 봉투가 잔뜩 들어있는 쇼핑백을 들고 있었던 핵심인물인 곽 씨에 대한 조사는 단 한 번 그것도 3시간 조사하는데 그친 것도 봐주기 수사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부분이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기자회견을 하면서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가겠다. 관련된 사람이 있다면 모두 저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MB 정권 비리 및 불법비자금 진상조사특위의 백혜련 변호사는 "이번 수사는 머리는 불구속하고 손발만 구속했다는 점에서 공정성을 상실한 수사"라고 지적했다.

전달자만 찾아내고, 지시자는 찾아내지 못한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의 수사.

전달자는 구속하고 지시자는 불구속하는 불공정한 수사, 그런데도 검찰은 "환부를 도려내는 스마트한 수사, 국민적 관심 사안을 신속히 종결 처리했다"고 자평했다.

검찰은 공정한 법집행이 생명이다.

몸통은 풀어주고 꼬리만 구속하는 봐주기 식, 불공정 수사라는 불편한 진실이 끊임없이 항간에 제기되는 한 '환부를 도려내는 스마트한 수사' 자평은 공허한 메아리로 남을 것이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