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세평- 강석범 청주미술협회 부회장

평소 아주 친분 있는 선배님이 계시다. 친분의 이유가 대학 선배이자, 같은 직업에 종사하는 이유도 있겠으나 무엇보다 내가 선배님의 인격에 매료되어 있는 사람인 것이 친분 유지의 가장 큰 이유로 꼽을 수 있겠다.

작년 어느 나른한 날, 아주 원초적이며 근본적인 인간의 속성에 대한 대화가 이루어졌다.

나는 내 가정에서 집사람이 치약을 밑에서부터 짜 올리지 않고, 중간 내지는 꼭지부분을 쥐어짜 사용하기 때문에 치약을 쓸 때마다 아주 불편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한 참을 듣고 있던 선배님이 '당신이 매일 치약을 밀어 올려놓으면 다른가족들도 편하고 좋을 텐데.' 하면서 빙그레 웃고 계셨다. 그러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우리 집 식구들은 잘 치우질 못해. 집사람부터 시작해서 아이들까지 정리정돈을 잘 못하는 편이지. 지금도 그렇지만 대학에 들어간 딸아이가 학교 다닐 때 딸애의 방에 들어가보면 발을 디딜 곳이 없을 정도지. 그러면 내가 사람 다닐 만큼만 길을 내서 치워주고 크게 나무라지는 않아. 본인이 스스로 느끼고 치울 때까지 기다려 주는 편이야. 또 우리 가족은 신문을 보면 정돈해서 놓지 않고 그냥 본대로 여기저기 낱개로 흩어놓기 일쑤지. 그럼 나는 하나하나 처음처럼 정리해서 다음 사람이 편히 볼 수 있도록 정돈해주지. 큰 아이가 초등학교 때 이런 일이 있었어. 아들 녀석이 어느 날 선행상을 받아왔는데 그 사연이 기특해. 집에서는 손 하나 까닥 하지 않던 아들이 아침 일찍 등교해서 학교 운동장에 떨어져있는 휴지를 정성스럽게 줍는 것을 본 교장 선생님이 아들에게 선행상을 주신 거야.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아빠가 항상 다른 가족을 위해 치우던 것을 본 아이가, 다른 친구들을 배려해 운동장을 치운 것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남을 탓하기 전에 내가 행동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나는 흩어진 신문을 정리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 내가 조금 귀찮아도 이런 행동 하나하나가 인류가 진화하는데 필요한 요소일 것 같다. 인류 진화에 아무리 환경과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 어떤 이유들이 있다 하더라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귀찮게 느껴질 수도 있는 작은 행동 하나 하나가 긍정적으로 실천될 때, 비로소 인류가 바람직한 진화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나는 고등학교 교사다.

지난해에는 환경담당 업무를 맡아서 아침 일찍 등교해 쓰레기통과 빗자루를 들고 학교 여기저기를 부지런히 줍고 쓸었다. 여름날엔 현관 앞을 쓸고 먼지를 가라앉히기 위해 물을 뿌려 놓았다. 땀으로 내 등이 흠뻑 젖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마음만은 따뜻해지곤 했었다.

말끔한 등굣길에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인사소리가 밝다. 내 기분도 좋아진다. 그럴 때마다 나는 선배님을 떠 올렸다. '나는 진화한다' 참 기분 좋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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