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한병선 교육평론가

지리학자 라첼(Ratzel)은 '환경결정론'을 주장했다.

그에 의하면 자연환경은 인간의 행동양식을 결정한다.

자연과 인간의 상관관계(相關關係) 중 인간은 자연환경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가능론(possiblism), 문화결정론(cultural determinism) 등의 이견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자연과 인간관계를 설명하는 중요한 이론중의 하나다.

미국의 지리학자 샘플(Semple)도 "인간은 지표의 산물"로 말했다. 역시 라첼의 환경결정론과 같은 맥락의 주장이다.

◆ 극적인 행동양식은 양날의 칼

우리의 극적인 행동양식도 라첼의 환경결정론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내용은 이렇다. 우리나라는 봄-여름-가을-겨울의 사계절이 나타난다.

하지만 특징적으로는 여름과 겨울로 축약된다. 봄과 가을이 있긴 하지만 이는 잠시 점이(漸移)적으로 나타나는 계절이다. 여기에 여름은 매우 무더운 반면 겨울은 시베리아 고기압의 영향으로 추운 날씨가 반복된다.

극과 극을 달리는 계절적 특성이 우리의 국민성에 그대로 투영되었다는 것. 그 결과 우리의 행동양식이 극단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생활의 모습은 극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긍정적으로 보면 역동성으로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부정적으로 보면 지나친 쏠림현상이다. 흔히 말하는 냄비근성으로 말할 수도 있다. 쉽게 끓어올랐다 쉽게 식어버린다는 점에서다.

그런 이유겠지만 부정을 저지르고도 그 때만 지나면 금방 잊혀 질 것이라는 식으로 버티는 경우는 허다하다.

아무리 큰 사건들도 그때만 지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식이다.

사례는 또 있다. 이런 모습은 과거 2004년 월드컵 길거리 응원에서 유감없이 보여줬다.

전국이 온통 붉은색 티셔츠 물결이었다. 심지어 거리 응원전에 나가지 않는 사람들을 매국노로 매도하는 경우도 있었다. 정신분석가들 중에는 이를 보고 집단적 히스테리라고 했다.

이분법은 사람들을 쉽게 현혹시킬 수 있는 강한 마력을 지닌다.

모든 것을 양자 대립구도로 만들어 놓는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 등으로 구분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런 이분법은 판단의 명료성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현실에서는 오용되는 경우가 많다.

사실이 그렇다. 선동가들은 항상 좌파와 우파의 대결로 몰아간다. 나는 선(善), 너는 악(惡)으로 재단한다.

우리 정치사에 중도는 설자리가 없는 것도 이런 이유다. 뿐이랴, 타협과 조율도 쉽게 되지 않는다.

대화보다 힘이 우선한다. 토론이 아닌 논쟁이 발생한다.

합리가 아닌 극단으로 치닫는 힘의 논리가 작용한다.

그리고 모두가 여기에 매몰된다. 지금도 목도하고 있는 정치현실 그대로다.

◆ 기계적 판단의 위험성 조심해야

이분법적 사고의 폐해는 심각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분법이 지니는 위험성을 알지 못한다.

이분법적 사고가 사람들의 사고영역을 얼마나 단순화 시키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세상일이 일도양단으로 떨어질 수 있는 일이 있는가. 세상은 양자택일로 판단할 수 없는 그 이상의 매우 복잡한 그 무엇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교육현장에서는 어떨까. 이런 사고는 교육현장에서도 잘 나타난다. 기계적 판단이 대표적인 예다.

이런 판단은 무관용을 부르짖는 교사들이 백배 활용하는 방법이다. 예컨대 이런 경우다. 교칙을 위반했으니 무조건 학교를 떠나라.

귀찮은 존재들은 하루 빨리 교문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 상책이라는 식이다. 유감스럽지만, 교육은 선도가 우선이란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결과다. 교사들이 아이들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을 때 제대로 된 교육이 가능하다는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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