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정문섭 논설위원

사람과 사물을 알리는 중요한 명칭이 이름이다.

국어사전에서는 이름의 정의를 어떤 사물이나 단체를 다른 것과 구별해 부르는 일정한 칭호 또는 사람의 성 뒤에 붙여, 그 사람을 다른 사람과 구별해 부르는 명칭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동양철학은 이름과 사물에 대한 이야기를 정명(正名)이라고 표현한다. 정명은 이름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지금도 세인들에 끊임없이 회자되는 것이 공자의 정명론(正名論)이다.

제자인 자로(子路)가 공자에게 "위나라에서 선생님에게 나라 경영을 맡긴다면 무엇부터 하시겠습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필야 정명호(必也 正名乎.)"라고 답한다. 이름부터 바로 잡겠다고 한 것이다.

공자의 정명론은 君君臣臣父父子子(군군신신부부자자)라 하여,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어버이는 어버이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함을 설파한다.

즉, 사회 구성원들이 제각기 각자의 신분과 지위에 따라 맡은 바 역할을 다할 때, 평화롭고 안정된 사회가 이룩될 수 있다고 말한다.

공자는 이름이 바르지 못하면 사람사이에서 말이 순조롭게 통하지 못하여 말과 실제가 서로 맞지 않고, 말과 실제가 서로 다르면 하려는 일을 이룰 수가 없다고 한다.

충북대학교 행정학과 강형기 교수는 그의 저서 '논어의 자치학'을 통해 '공자가 이름을 잡겠다고 한 것은 개념과 역할을 분명히 하여 각자의 이름에 어울리는 소임을 다하도록 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이렇듯 이름을 바로 잡고 그 이름을 지켜나가는 것은 모든 경영의 기반이며, 기본이 된다. 정권을 잡는 위정자가 나라의 이름을 중요하게 여기고, 명분을 따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 점에서는 지명(地名)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최근 행정구역 명칭 변경 승인을 행정안전부에서 지방자치단체 조례로 이관한 2005년 6월부터 지명을 바꾼 곳이 20여 곳이나 된다는 보도다.

가장 대표적인 개명의 성공사례로 김삿갓면을 든다. 강원도 영월군은 2009년 10월 하동(下東)면 이름을 김삿갓면으로 개명한 이후로 이곳에서 생산되는 김삿갓포도의 브랜드가치가 높아져 전국에서 포도주문량이 늘고 있다고 한다.

하동면일 때와 달리 지금은 한 번만 들어도 김삿갓 면을 기억하는 덕분에 특산물의 인지도도 높아지고 있고, 김삿갓문학관을 찾는 관광객도 2008년 5만900명에서 명칭 변경 이후에는 세 배 이상 증가했다는 보도다.

한국산업디자인진흥원은 2010년 김삿갓면의 브랜드 가치를 1천억 원 이상 되는 것으로 분석하기도 했다. 이런 효과에 힘입어 박선규 영월군수는 영월군 '서면'도 한반도와 지형이 닮았다고 해서 '한반도면'으로 개칭했다.

충주시 이류면(利柳面)은 '두 번째'라는 어감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는 의미를 담은 대소원면(大召院面)으로 변경했다. 그러나 충주지역에는 금가면, 소태면 등 아직도 멋쩍은 느낌을 주는 면단위 이름이 많아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자주 오르내린다.

행정구역 명칭을 변경하다보니 부작용도 나오고 있다. 경북 영주시는 단산면을 소백산면으로 변경하면서 이웃 단양군과 사이가 아주 나빠졌다.

시인 김춘수는 '꽃'이라는 시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고 표현했다. 어떤 이름으로 부르고 어떤 이름으로 불리느냐에 따라 그의 성격도 달라질 수 있다.

수천 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이름부터 바로 잡으라는 공자의 가르침은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