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광의 재미있는 과학이야기]

사람들은 의사소통을 위해서 주로 언어를 사용하며, 때에 따라서는 손짓이나 몸짓 같은 동작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벌들은 꿀을 발견하면 춤 동작으로 꿀이 있는 위치를 동료들에게 알립니다.

그러면 수십억 마리가 함께 살아가는 미생물들은 과연 어떤 방법으로 의사전달을 하여 집단적인 행동을 할까요? 재미있는 말이지만 미생물도 언어를 사용하여 의사소통을 합니다. 다만 음성이나 행동만이 아니라 특수한 화학물질을 동시에 분비하는 화학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이 독특합니다.

예를 들어 비브리오(Vibrio) 같은 병원성 미생물이 사람의 체내에 감염되었을 때 무작정 독소를 만들어 공격하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자신들이 가진 화학무기, 즉 독소의 함량이 충분히 사람에게 해를 입힐 수 있다고 판단될 때 비로소 공격을 시작하지요.

사람들이 전쟁할 때와 같이 미생물도 고도의 전술을 구사하는 것입니다. 자기편 숫자가 상대방보다 적을 때 공격하게 되면 파괴력이 적어서 제대로 공격을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람의 면역과 같은 강력한 방어무기의 역공을 받게 되어 자멸하고 맙니다.

따라서 숫자가 충분히 많아져 이길 자신이 생겨야만 화학언어를 사용하여 수십억 마리의 미생물에게 동시에 명령을 전달함으로써 일제히 공격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미생물은 단 한 가지 화학물질만을 언어로 사용할까요?

지금까지 연구된 바에 의하면, 병원성 미생물들은 'AHL(Acyl Homoserin Lactone)'을 비롯한 대략 세 가지의 화학물질을 사용하여 소통하고 있습니다. 미생물이 사용하는 화학언어에도 사람들의 경우처럼 표준말이라는 기본구조에 다양한 변화를 가진 사투리가 존재합니다. 동시에 두 가지 이상의 화학언어를 구사하는 미생물도 보고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여러 나라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는 언어를 개발하고자 노력하고 있는데, 미생물의 세계에서는 이미 모든 미생물이 공통으로 사용하는 언어가 이미 발견되고 있습니다. 또한, 미생물끼리 전쟁을 할 때는 공용 언어로 사용하는 화학물질을 자신이 많이 흡수하여 다른 미생물들이 자기의 숫자를 파악하지 못하도록 정보전을 하는 경우도 보고되고 있습니다.

충분한 숫자로 불어나면 미생물들은 화학언어로 방송을 합니다. 수십억 마리의 미생물들은 방송을 들은 후 잠자고 있던 자신의 유전자 공장을 깨워서 대량으로 독소를 생산하게 됩니다.

이때 혹시 잘못된 방송을 듣고 실수할 수 있는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미생물들은 방송된 화학언어가 자신들이 행동해야 하는 명령인지를 면밀히 확인합니다. 자물쇠와 열쇠 같은 체계를 사용하여 확인한 후에야 독소 생산 공장을 가동하는 신중함도 보입니다. 수십억 마리의 병사에게 동시에 명령을 전달하고 행동하는 미생물이야말로 진정 무서운 군대입니다.

사람들이 외부 침입을 막기 위해, 성을 쌓거나 담장을 치듯이 미생물도 생체막이라는 성곽을 만드는데 이때도 화학언어를 사용합니다. 명령에 따라 개개의 미생물들이 벽돌을 만든 후 동시에 쌓기 때문에 아주 짧은 시간 내에 성곽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완성된 미생물 생체막은 작은 통로로 잘 구성되어서 성장에 필요한 영양분이나 산소는 잘 공급하고, 미생물에 위협적인 요소인 항생제나 면역물질의 접근은 원천적으로 막고 있습니다. 수십억 마리의 미생물이 짧은 시간에 만드는 성곽이 그렇게 정밀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우리가 배워야 할 기술입니다.

공격용 병원성 독소와 방어용 생체막뿐만 아니라 다른 미생물과의 전쟁인 항생제 생산, 식물체에 침입하여 자기 유전자를 주입하는 것과 같은 미생물 집단의 초대형 사업은 반드시 화학언어를 사용하여 합동으로 합니다.

최근에는 병원성 미생물의 화학언어를 교란시켜서 인간을 괴롭히는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유하는 신약을 개발하고자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미생물이 나누는 언어를 인간이 완전히 이해하게 되면 화학적이든 물리적이든 대화를 통해서 병을 고칠 수 있는 방법도 개발될 것입니다.

즉 위협적인 미생물을 우호 세력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지요. 이를 위해 미생물학자들은 끊임없이 미생물 언어의 비밀을 풀고 있습니다.

/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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