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세평] 강석범 청주미술협회 부회장

매주 목요일마다 한국교원대학교 초등교육과에 강의를 나간다. 초등교육과는 졸업할 때까지 미술실기 영역을 의무적으로 3학기 이수해야 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15명의 학생이 한 반으로 편성되었는데 대부분 2학년들로 구성되어있는 반 이다.

우연하게도 미술을 심화전공으로 선택한 학생은 한 명도 없다. 따라서 학생들의 미술에 대한 관심은 졸업 필수학점을 이수하는 '의무집단'으로 봐도 무방하다. 첫 수업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일종의 concept 찾기다.

마침 학생들이 자기소개도 자연스럽게 할 겸, 자신을 분석한 조형언어를 발표하는 수업이다.

한 주가 지나면서 학생들 틈으로 조금은 성숙해 보이는 여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그 친구는 대학4년을 마치고 학사편입으로 3학년에 편입한 신입생이었다. 이왕이면 편입생을 먼저 소개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편입생의 발표 순서를 앞에 두었다.

편입생이 앞에 나와 잠시 머뭇거리더니 그림을 폈다. 한눈에 보기에도 '물고기'한 마리만 덩그러니 그려 있었다. 언 듯 '메기'같기도 했다. 그림을 바라보는 나머지 학생들은 물고기 한 마리를 놓고, 도무지 어떤 해석도 불가능 할 것 같은 표정들이다.

잠시 후 편입생이 입을 열었다.

"일본인들이 많이 기르는 관상어 중에 '고이'라는 잉어가 있습니다. 이 잉어는 어항에 두면 5~8cm밖에 자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커다란 수족관이나 연못에 넣어 두면 15~25cm까지 자라고, 강물에 방류하면 90~120cm까지 자란다고 합니다. '고이'는 자기가 숨 쉬고 활동하는 세계의 크기에 따라서 난쟁이 물고기가 될 수도 있고, 대형 잉어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고이'가 처한 환경과 같다면, 우리가 더 큰 생각을 품고 더 큰 꿈을 꾸면 더 크게 자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교육과 출신입니다. 서울에 있는 명문 사립초등학교에서 2년간 교과전담 교사도 엮임 했습니다. 초등학교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진짜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초등학교 교사 보다는, 한국외국어대학 출신으로써 중등 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이 없진 않았으나, 그것은 어쩌면 내가 나를 어항에 가두고 있는 것,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막 어항을 뛰쳐나온 '고이' 물고기입니다. 제 스스로 또는 주변에서 만들어놓은 어항의 틀을 벗어나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지금의 제 선택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꼭 멋진 초등학교 선생님이 될 수 있다는 꿈과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은 여기 이렇게 A4크기의 그림화지를 벗어나지 못한 '고이' 물고기 이지만, 결국 커다란 물고기가 될 제 자신을 그려보며 행복해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편입생 선배의 발표가 끝나고 강의실에 몇 초간 긴장된 침묵이 흘렀다.

내가 먼저 박수를 쳤다.

"브라보~" 여기저기서 조용하면서도 진지한 박수소리가 한참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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