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정문섭 논설위원

2년 전부터 아들 두 명이 서울과 대전으로 대학에 진학해 각자 기숙사에서 지내면서 아내와 나는 둘이서 지낸다. 그러다 보니 둘이서 식사를 하는 경우도 많다. 딱히 약속이 없어 아내와 점심을 먹다 요즘 재미를 붙인 TV프로가 있다.

고려시대 무신정권을 다룬 '무인시대' 다. 해주 정씨의 시조라는 정중부 장군을 비롯한 무신들의 쿠데타 과정이 드라마틱하게 전개되어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무인들이 자주 쓰는 용어가 '수급(首級)을 가져오겠다'는 말이다. 수급이란 '싸움터에서 베어온 적장의 목'이란 뜻이다.

그런데 7~800년 전 고려시대 쿠데타 무신들이 사용하던 '수급'을 패러디한 만화가 정가에서 일파만파를 일으키고 있다. 새누리당 이준석 비상대책위원이 자신의 트위터에 문재인의 수급이 등장한 패러디물을 링크한 것이 논란의 불을 지핀 것이다.

문제가 된 것은 일본 요코야마 미쓰테루가 쓴 만화 '전략 삼국지'를 패러디한 것으로 동탁을 토벌하는 작전에 합류한 유비의 의동생 장수 관우가 적장 화웅의 수급(목)을 베어오는 장면이다.

이 패러디는 지난 4·11 총선에 출장한 새누리당 손수조(관우)가 문재인(화웅)의 목을 베어 토벌군대장 원소(이준석 비대위원)가 지켜보는 가운데 박근혜 위원장(조조) 앞에 수급을 받치는 내용으로 지난 3월부터 인터넷에서 나돌던 것이다.

그런데 선거가 끝난 뒤에 이준석 비상대책위원이 자신까지 등장하는 패러디만화를 자랑할 요량으로 뒤늦게 자신의 트위터에 링크시켰다가 여론의 집중 뭇매를 맞은 것이다.

이준석 위원은 논란이 되자 곧바로 링크자료를 삭제하고 문 상임고문에게 전화로 먼저 사과했고 이어 상경하는 문 상임고문을 찾아가 직접 사죄의 뜻을 전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도 자신의 트위터에 '이준석군이 성의 있게 사과해서 이를 받아들였다'며 '젊은 시절 누구나 실수와 실패를 겪으며 성장하는 것이니 더 이상 비난하지 말아 달라'고 이 비대위원을 향한 비난을 자제할 것을 요청했다.

이번 사건을 보노라면 재미있는 현상이 발견된다. 정작 이 패러디물을 만든 사람에 대한 비판수위는 낮고, 이를 링크시킨 이준석 비대위원에 대한 비난여론이 들끓었다는 사실이다. 개는 한자로 견(犬)이라고 쓴다. 우스개이지만 사람은 누구나 두 마리의 개를 갖고 산다고 한다. 하나는 선입견이고, 또 하나는 편견이라는 개다.

이번 사건을 놓고 어떤 사람은 새누리당 비대위원이기에 용서할 수 없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이준석 위원은 20대에 불과한데 일부에서 그를 비난하는 수준은 도를 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인 것은 당사자인 문재인 상임고문이 대인답게 행동하고 그를 용서한 것이다.

이 위원이 아무리 영리하다고 하나 그는 아직 아이에 불과하다. 자기 사진이 패러디된 만화에 등장한 것을 보고 영웅심리가 발동하여 이를 자신의 트위터에 링크시켰을 것이라는 추측이 그려진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내 편이 아니면 상대를 무조건 적대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정치의 근본도 백성을 위한 것이라면 여야를 떠나 상생의 정치라는 큰 틀 속에서 진행이 되어야 한다. 잘못을 알고 뉘우쳤다면 그를 대하는 것도 그런 연속선상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요즘은 SNS의 시대이다. 컴퓨터 자판에서 SNS를 치면 '눈'이라는 글자가 된다. 인터넷은 시퍼렇게 눈을 뜬 채 우리 모두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다. 그래서 본인이 망각한 일도 기억해내어 본인을 곤혹스럽게 만든다.

방송인 김구라는 10년 전 발언한 막말로 방송출연을 중단해야 했고, 국회의원들은 20여 년 전에 쓴 논문이 표절임이 드러나 곤혹을 치르고 있다.지금 우리는 언제 어디서 내 과거의 기록이 나올지 모르는 SNS시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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