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정문섭 / 논설위원

사나운 호랑이에게 쫓기던 사람이 피신하려고 엉겁결에 우물 속으로 들어갔다. 나무 가지를 타고 한참 내려가다 보니 우물 바닥에는 독룡(毒龍)이 혀를 널름거리며 올려 본다. 다시 위를 보니 이제는 흰 쥐와 검은 쥐가 타고 내려온 나무를 갉아먹고 있다. 가히 사면초가(四面楚歌)의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뭇가지의 벌집에서는 꿀이 떨어지고 있고, 매달려 있는 사람은 그 꿀이 달다고 연신 빨아대고 있다. 자신에게 닥쳐올 위기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언젠가 필자가 충북 단양에 있는 구인사 절에 들렀다가 감탄했던 벽에 그려진 그림 내용이다.

조계종의 원로였던 혜암 스님은 이 형상을 보면서『한바탕 꿈이로구나.』라고 표현했다.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고 말 인간들이 한순간 쾌락을 즐기며 사는 세상살이를 이처럼 정확하게, 상징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싶었다.

한편으로 달리 해석하면 이 그림은 가치관의 혼조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스승의 날에 즈음하여 강원도의 한 초등학교에 한 학부모 어머니가 찾아와 자신의 자녀가 반장이 되지 못한 이유를 따지며 수업 중인 여교사의 머리채를 잡고 폭행을 했다.

교사, 학생, 학부모 사이에 신뢰가 무너진 상태에서 나타난 가치관의 혼조가 빚어낸 안타까운 장면이었다. 이 때문에 교사들은 학생 인권 조례 제정 이후 교권침해는 더욱 늘고 있지만 교권을 보호하고 지킬 수 있는 장치는 마련되지 않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민주노동당 계열 등의 통합진보당 당권파와 국민참여당, 새진보통합연대 등의 비당권파로 분류되는 조준호 공동대표가 극단적인 대립양상을 보였다. 그러더니 지난 12일에는 결국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에서 당권파 소속 당원들이 비당권파인 심상정 중앙위의장과 유시민·조준호 공동대표를 구타하는 장면이 언론에 비쳐지면서 국민들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 역시 스승의 날 한 학부모와 마찬가지로 구인사 절에 그려진 벽화의 장면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이렇듯 자신이 보는 세상이 가장 크고,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 가장 위대하며, 자신이 가장 올바른 판단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위에서 열거한 사례들은 우물 속에 사는 개구리가 자신이 보는 하늘만 보고 하늘의 크기를 판단하는 편견과 조금도 다를 바 없어 보인다.

15일 오후 충북자치연수원에서는 이원종 전 충북도지사가 '지방자치시대 공직자의 가치관'을 주제로 후배 공직자들에게 소중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이 전 지사는 이날 공직자들이 갖춰야 할 프로정신과 꿈너머꿈, 신바람나는 일터, 중년위기의 극복, 행복의 열쇠 등 공직자의 인간관계 등을 선배의 입장에서 조언하는 과정에서 장자의 고사성어를 인용하여 "우물 속 개구리에게는 바다를 제대로 설명해 줄 수 없고,(井蛙不可以語海), 한 여름만 살다 가는 여름 곤충에게는 찬 얼음에 대하여 설명해 줄 수 없으며,(夏蟲不可以語氷). 편협한 지식인에게는 도의 진정한 세계를 설명해 줄 수 없다(曲士不可以語道)."고 말했다.

이 전 지사는 마지막으로 세권의 책 중에서 '내안의 상자를 깨라'를 설명하면서 "공직자들은 자신이 속해 있는 공간과 자신이 살아가는 시간,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라는 3가지 집착과 한계를 파괴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나무만 바라다보면 숲은 보이지 않는 법이다. 그러기에 나뭇가지의 벌집에서 떨어지는 꿀맛에 빠져 사면초가의 위기형국을 바라다보지 않는다면 파멸이 온다는 구인사 벽화의 그림은 우리 모두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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