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정문섭 논설위원

영어단어인 디지털(Digital)의 어원은 손가락이란 뜻의 라틴어 디지트digit에서 파생된 말이다. 아날로그가 모양으로 표시된다면 디지털은 분명하게 1, 2, 3을 셀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시 말해서 아날로그가 정확한 수치 파악이 어려운 곡선 그래프라면 디지털은 각각의 눈금과 수치를 바로 확인할 수 있는 막대그래프에 비유할 수 있다.

0과 1을 이용한 디지털 방송은 종래의 아날로그 방식보다 신호의 왜곡이 적어 선명한 화상과 깨끗한 음질을 재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디지털이 등장하면서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요즘 나이 드신 분은 아날로그 세대라는 오명을 들으면서 왠지 모를 서러움마저 느낀다.

과연 세상은 디지털 세대가 모든 것을 지배하고 아날로그 세대는 발붙일 곳조차 없는 것일까?

21일 저녁 한국강사연합 5월 정기 강좌가 열린 성공자치연구소 3층 강연장에서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개념을 새롭게 조명해보는 의미 있는 강연이 열렸다.

이날 강사로 초빙된 전남지방경찰청 담양경찰서 김경곤 순찰팀장은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적 감성과 창의적 소통'의 주제 강연을 통해 아날로그적 감성의 중요함을 일깨워주었다.

그는 21세기 변화의 흐름과 함께 지금을 '창의와 감성의 시대'로 규정하고 인간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소통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화두를 던지면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아날로그적 해법을 제시했다.

"통! 통! 통! 밥통, 술통, 목욕통을 같이 나눠라"

아버지의 뒤를 이어 경찰관이 됐다는 그는 담양경찰서 순찰팀장으로 부임한 이후 지역민들과 밥통을 나누며 아날로그적 소통을 하는데 많은 시간을 쏟아왔다.

버스정류장에 앉아있는 할머니를 보면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할머니에게 더 이상 버스를 기다리게 할 수 없다.'며 목적지까지 순찰차로 태워다 주었고, 다문화가정의 아이에게는 순찰차놀이를 통해 진짜 순찰차를 태워주며 경찰관의 꿈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점심시간에 할머니들과 경로당에서 식사를 하며 가족과 같은 경찰의 이미지를 심어주었고, 가출했던 사람을 찾으면 희망을 갖고 다시 재기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도와주었다. 경찰도 복지경찰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신념과 그간 노력해온 모습은 수강생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세상을 살다보면 0과 1사이에도 대변할 수 있는 경우의 수들은 수없이 많다. 이 많은 과정 속에서 아픔을 함께 하며 기쁨과 행복을 나누는 것이 아날로그적 사고의 접근법이다.

어찌 보면 아날로그는 디지털에 뒤처진 개념이 아니라 디지털을 이끌어가는 발판과도 같은 것이다. 디지털의 종착지도 결국은 인간을 향해 가는 것이며, 가장 인간다운 것은 아날로그적 감성을 통해 접근하는 것이다.

그는 순경이란 직업을 '1에서 100까지가 아닌, 0에서 1까지 가도록 도와주는 고단한 자리'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송곳의 끄트머리와 같아서 맨 먼저 아픔을 견뎌내야 하는 자리'라고 색다른 정의를 내렸다.

세상은 도전하는 사람들에 의해 창조적 변화가 이루어진다.

아무리 디지털 사회로 바뀐다 해도 결국은 온정과 따듯한 마음을 가진 아날로그적 감성에 의해 세상은 조금씩 변화되는 것이다.

'내가 만일 한 가슴의 미어짐을 막을 수 있다면 내 삶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국민에게 다가서는 그의 지난한 몸짓은 언젠가는 엄청난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확신을 안겨주었다.

국민 한 사람의 미어짐을 막으려는 한 경찰관의 모습이 더 큰 경찰, 더 멋진 경찰, 더 위대한 경찰로 변화되는 주춧돌로 작용할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강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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