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거 기자단-포데로샤]

강진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마지막 여행지인 해남 두륜산 대흥사로 갔다. 일주문을 지나 대흥사 앞마당에 들어선 후 와불능선을 올려다보았다. 어쩜 그리 신기한지. 5년 전쯤 제주도에 갔을 때 유람선을 타고 한라산을 보았는데 마치 여인이 누워 있는 모습 같았다. 와불능선도 그때만큼 새롭고 오묘하다.

대흥사 가람은 독특해 보였다. 여러 사찰을 다녀보면 중심에 대웅전이 위치하고 있는데, 대흥사는 대웅전이 한쪽으로 비켜져 있다. 대웅전을 보고 뿌리가 이어진 연리근을 본 뒤 천불전에 들렀다. 대흥사는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던 우리나라 다도를 중흥시킨 초의선사가 몸담았던 곳이다.

부처님오신날 아침이 밝았다. 일어나 씻고 달마산 미황사로 향했다. 절 마당은 연등으로 가득했다. 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담았겠지. 나도 대웅전에 들어가 부처님께 삼배했다. 공양간에서 스님과 신도들은 참배객에게 드릴 밥과 떡, 음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두륜사를 다 둘러보고 간 곳은 땅끝마을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안개가 시야를 가렸고, 모노레일마저 고장이 난 상태였다. 걸어서 전망대까지 갔다. 무더운 날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나도 모르게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전망대에서 잠깐 에어컨 바람을 쐬고 다시 걸어 내려왔다.

강진을 대표하는 인물이라면 다산 정약용 선생이다. 해남을 대표하는 인물이라면 바로 해남 윤씨 집안 사람들이다. 고산 윤선도와 공재 윤두서이다. 땅끝마을을 찍고 이제는 다시 북진하면서 첫 번째로 들른 곳이 윤두서 고택이었다. 담쟁이가 점령한 담장을 뚜벅뚜벅 지나니 입구가 나왔다. 이 시간 아무도 방문한 사람이 없나보다. 잠시 앉았다가 ㄷ자형 집을 둘러보고 나왔다.

다음 장소는 고산의 숨결이 살아있는 윤선도 유적지였다. 해남읍 연동리에 위치한 이 곳은 우리나라 최고의 명당 중 한 곳이란다. 먼저 윤선도 유적전시관을 봤다. 국보나 보물은 없지만 해남 윤씨 집안의 내력과 시서화 전시품만으로도 배울 게 많았다.

해남 윤씨가는 백성을 사랑한 종가로도 유명하다.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세금을 내지 못해 옥에 갇히는 경우가 많다는 소식을 들은 윤효정이 관아에 찾아가 백성의 세금을 대신 내어주고 풀어준 일을 세 번이나 했다고 하여 이때부터 해남 윤씨가는 '삼개옥문적선지가'라고 불렸단다.

고산 윤선도도 근검과 적선이 집안을 융성하게 되는 최고의 덕목임을 강조하며 실천했다. 공재 윤두서도 백성을 구할 방법을 강구하고 근검한 삶의 모습을 보이려 노력했다고 한다. 훌륭한 집안은 훌륭한 가풍이 있다. 그 가풍에는 꼭 어려운 이를 돕는 마음이 녹아 있다.

해남에서의 마지막 방문지는 은향다원이었다. 찻집이라고 생각하고 왔더니 녹차를 재배하는 다원이었다. 서울에서 귀농한 노부부가 유기농으로 녹차를 재배하고 계셨다. 청주에서 왔노라 하니 안으로 들어오라며 손님을 반갑게 맞아주셨다. 실내에서는 차를 말리는 기계가 연신 돌아가고 있었다. '아! 이런 과정을 거쳐 녹차가 만들어지는구나' 새삼 신기한 구경을 다한다.

주인장께서 직접 만드신 발효차를 마시며 1시간 가량 이야기를 들었다. 녹차가 건강에도 참 좋은데 커피에 밀려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마신 발효차가 엄청 맛있기도 해서 돌아가서 먹으려고 차를 구입했다.

이로써 해남여행도 끝이 났다. 아쉬움이라면 시간이 짧아 보길도를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 기회는 분명 또 있을 것이다. 바다와 산사, 윤선도 유적지와 녹차와의 만남으로 오래도록 해남을 기억하게 될 것 같다. http://poderosha.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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