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정문섭 논설위원

전두환 전 대통령이 육군사관학교 학생들에게 사열을 받았다고 한다. 사열(査閱)은 부대를 방문한 귀빈이나 지휘관이 정렬한 병사들 앞을 지나면서 군사 교육 상태나 장비 유지 상태 따위를 살펴보는 의식이다. 전직 대통령이 육사 선배의 입장에서 사열을 했다면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그는 1997년 4월 17일에 대법원에서 '반란수괴·내란목적살인·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형이 확정된 사람이다.

인명진 전 새누리당 윤리위원장도 12일 오전 MBC라디오 손석희에 시선집중에 출연한 자리에서 "이등병으로 강등된 전 전 대통령이 육사생도들을 사열했다면 이는 역사가 거꾸로 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잠시 관련 역사를 짚어보자. 1995년 12월2일 전두환 전 대통령은 김영삼 정부 시절 내란죄로 검찰소환 통보를 받자 연희동 자택골목에서 그 유명한 '골목성명'을 발표한다. 그러자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즉시 체포를 명한다. 결국 그는 재판과정에서 무기징역과 추징금 2천205억 원을 선고받고 구속 수감된다.

2년 후인 1997년 12월 22일 그는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풀려났지만 추징금은 사면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따라서 2천205억 원의 추징금은 납부해야 하나 그는 자신의 통장에 29만 원밖에 없다고 주장하며 추징금을 납부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그는 골프를 치며 호화스런 생활을 하고 있고, 얼마 전 그의 손녀(27)는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억대의 비용이 드는 결혼식까지 올렸다.

이런 가운데 한 초등학생의 시 '29만원 할아버지'가 네티즌들 사이에 화제가 되고 있다. 서울 연희초등학교 5학년 유승민 군은 '29만원 할아버지'라는 시를 써서 '5·18 32주년 기념-제8회 서울청소년대회'에서 서울지방보훈청장상을 수상했다.

이 시에서 유군은 "우리 동네 사시는 29만원 할아버지는 맨날 29만원 밖에 없다고 하시면서 어떻게 그렇게 큰 집에 사느냐?"고 묻는다.

또한 "왜 군인들에게 시민을 향해 총을 쏘라고 명령하셨느냐?"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죽었는지 아느냐?"라는 질문을 던진 뒤 지금이라도 "얼른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빌어 유족들에게 더 이상 마음의 상처를 주지 말아야 한다."고 나무라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자신을 체포 구속한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는 감정이 많은 듯하다. 현실 정치에 일일이 참견하고 발언을 하는 그를 겨냥해 "시도 때도 모르고, 사람 가릴 줄도 모르고 짖어댄다."면서 '주막 강아지'라고 비아냥댔다가 김영삼 측근들로부터 '골목강아지'소리를 듣기도 했다.

전직 대통령들의 공과(功過)는 훗날 역사가들이 평가할 문제다. 그렇더라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지 못하는 이들의 행동은 역사적 평가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인터넷을 검색하다 멀쩡하게 살아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사망 자료(?)들이 의외로 많음을 보고 놀랐다. ''속보 전두환씨 사망', 빨리 이런 기사를 볼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는 글에서부터, '전두환이 곱게 늙어서 죽는다거나 하면 이 세상이 너무 불합리한 것 같다'고 악담하는 네티즌들도 있었다.

사후 그의 사체를 어디에 안치할 것인가를 놓고 논쟁도 뜨겁다. 현행법에 따르면 그는 전직대통령 신분이니 국립묘지에 들어가는 것이 합당하다. 그러나 올해 2월 개정되고 다음달 1일부터 발효되는 개정안에 따르면 그는 내란죄나 내란목적 살인죄가 적용되어 국립묘지 안장 불허대상에 포함된다. 그런데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을 보면 '국가장'을 치른 사람은 자동적으로 국립묘지행이 보장된다고 한다.

사후에도 말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삶이다. 그러나 지금 그에 대한 평가는 초등학교 학생 눈에 비친 '29만원 할아버지'가 제격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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