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정문섭 논설위원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한 조각이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2009년 5월23일 이 같은 유언을 남기고 표연히 세상을 하직한 노무현 전 대통령.

그는 떠났어도 그의 유언은 살아있는 언어처럼 남아 있는 사람들의 가슴속을 한동안 휘젓고 다녔다.

위대한 자연 앞에서, 흐르는 역사 앞에서, 삶과 죽음은 모두 한 조각일 수 있다고 했던 그는 필생즉사(必生卽死), 필사즉생(必死卽生)의 삶을 선택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소식을 듣고 필자는 당시 본란을 통해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현직 대통령'이라고 단언한 적이 있다.

바둑 용어인 생불여사(生不如死)를 인용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은 두 집을 짓고 살긴 했지만 이미 전체 국면은 그르친 것이라고 보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검찰의 책임으로 돌릴 순 있어도 이 대통령이 당시의 사태를 즐긴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을 터였다. 5년 후 이 대통령 역시 권력을 내놓아야 할 것이며, 이 경우 업보를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예감이 들었던 터였다.

역사는 여지없이 반복되고 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표현처럼 MB정부의 실세들도 어느새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서 추풍낙엽처럼 무너지기 시작했다.

MB정부 내 최고의 실세이자 상왕(上王) 정치를 한다는 설까지 나돌던 이상득 전 의원은 한때 4대 권력기관장의 인사를 좌지우지 하는 등 최고의 권력을 행사하며 정계와 재계를 떡 주무르듯 했다.

'모든 인사는 형으로 통한다.'는 '만사형통(萬事兄通)'에 이어 '형님이 말을 하면 논란이 종결된다.'는 의미를 담은 '만사형결(萬事兄結)'도 모두 MB의 친형 이상득 전 의원을 겨냥한 말들이었다.

그러던 그가 검찰의 조사를 받게 되자 언론은 최시중, 박희태 전 국회의장과 함께 이 전 의원도 권력무상의 역사에 동참했다고 보도했다.

이명박 정부의 창업 공신이자 핵심 맴버였던 3인방들. 이중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방통대군'으로 불리며 종편사 선정과 방송통신 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박희태 전 의장은 18대 국회에서 집권당 대표와 국회의장을 지내며 입법부를 장악했었다.

그러나 최시중 전 위원장은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에 연루돼 지난 5월 구속 기소됐고, 박 전 의장 역시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으로 지난달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MB정부는 형을 포함한 측근들의 총체적 비리로 벌써부터 심각한 레임덕에 빠졌다. 한 언론은 19번째 심판대에 선 이상득 전 의원을 거론하면서 'MB정부는 완벽하게 도덕성이 무너진 정권'이라고 표현했다.

인사를 좌지우지하고, 부실저축은행을 비호하며 뇌물을 받아먹고, 비리 내정자를 감싸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던 이상득 전 의원을 비롯한 3명의 실세들은 금품수수에 연루되어 모두 지저분하게 낙마했다.

MB 역시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내곡동 사저' 파문에 부동산실명제법 위반으로 야당에게 형사고발까지 당했다. 우스개로 '쪽박'과 '대박'의 갈림길에 선 명박, 퇴임 후 MB의 삶의 궤적이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 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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