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우 교수의 문화선진국에서 배운다 <5> 이탈리아 로마에서 보는 세계문화

■ 로마 답사는 마지막 순서로 해라(?)

로마는 마지막에 가라는 말이 있다. 로마를 본 눈으로 다른 곳을 보면 실망한다고 했다. 이 말은 사실이었다. 터키와 스페인을 보고 시리아 레바논 리비아의 여러 유적지를 찾아가려고 준비했지만 이제 맥이 빠져버렸다. 로마의 인상이 그렇게 강렬했다.

베네치아의 유리공예와 피렌체의 우피치미술관, 밀라노의 두오모 첨탑에서 받는 감흥은 상상 이상이었다. 피티궁전의 소장품, 메디치가의 옛집, 두오모성당과 광장에서도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은 인류문화의 정수를 찾을 수 있었다.

역사유적지 답사는 로마 인근 티볼리의 하드리아누스 황제 별장이 참으로 대단했다. 거기에 당대 최고의 다양한 건축과 조형물 집단이 있었다. 비록 지금은 옛 영화의 흔적뿐이지만 갖가지 상상이 넘쳐 공간이 꽉 차는 듯했다.

로마는 어떠한가? 제국의 발원지이며 수도인 이 도시는 건축물의 잔해만으로 눈과 머리를 압도했다. 구글어스에서 재현한 로마의 입체 이미지는 궁전과 신전뿐만 아니라 공회당을 비롯 도시 전체가 풍성하였다.



■ 세계의 문화는 로마로, 로마의 문화는 세계로

로마는 군사력과 기술력으로 지중해세계의 패권을 차지하였다. 그 바탕이 된 것은 정치의 효율성이었다. 그리스인이 가진 교양과 기술을 바로 국가와 사회 조직의 역동성으로 활용해서 최상의 도시를 만든 것이다.

로마는 정치와 경제 중심이 아닌 문화의 도시였다. 정치와 경제의 힘은 세월이 가면 함께 사라진다. 하지만 문화는 갈수록 힘이 더해진다. 현대문화는 로마문화의 산물이다. 오늘날 로마가 이룩한 문화를 활용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세계의 문화가 로마로 들어갔고, 로마의 문화가 다시 세계로 퍼져나갔다. 로마 이후 제국을 이룬 유럽국가는 로마를 닮으려고 했다. 황제의 이름부터 수도의 모습까지, 그리고 글자에서 문화 관행까지 모방하려고 했다.

로마에서 진기하게 보이는 조형물이 오벨리스크(Obelisk)이다. 이집트에서 탈취해온 이 조형물은 지금 세계 여러 곳에 있다. 세계문화를 오벨리스크를 통해 본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 오벨리스크는 태양신 라(Ra)의 상징

오벨리스크는 그리스어로 바늘이나 쇠꼬챙이란 뜻이다. 이집트를 정복한 그리스인들은 지명을 비롯한 온갖 이름을 그리스식으로 바꾸었다. 그래서 점점 위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피라미드 모양의 기념 건조물을 바늘 즉 오벨리스크라고 했다.

고대 이집트인은 많은 신을 섬겼다. 왕 중의 왕이 태양왕인 파라오였고, 신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신이 태양신 라(Ra)였다. 이집트인이 라의 상징으로 신앙한 것이 바로 태양 광선처럼 길쭉하고 뾰족한 형태의 오벨리스크였다.

단단한 화강암 사면에는 라와 파라오에 대한 찬가를 상형문자로 새겼다. 처음엔 피라미드나 신전에 작게 세웠으나, 신왕국 시대부터 신전 입구인 탑문 옆에 한 쌍씩 거대하게 세웠다. 이후 수천 년 동안 여러 왕조를 거치면서 세운 오벨리스크는 매우 많았다.



■ 로마제국이 시작한 오벨리스크 약탈

프톨레미왕조는 이집트를 300년을 다스렸다. 이어 로마제국은 기원전 30년 이집트를 정복해서 비잔틴제국에 넘길 때까지 425년 간 지배했다. 로마 황제들은 이집트의 오벨리스크에 관심을 가져 마구 로마로 가져갔다. 로마인이 만든 것까지 합해 현재 13개가 로마 시내 곳곳에 남아있다. 사람조각상 옆에도 올렸고, 코끼리상 위에도 올렸다.

포폴로 광장 중앙에 있는 24m 높이의 오벨리스크는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전쟁 승리를 기념해서 태양의 도시를 뜻하는 헬리오폴리스에서 가져온 것이다. 기원전 13세기에 만든 이 오벨리스크는 1300년 간은 이집트에 있었고, 2천년 동안은 로마의 광장을 버티고 있었다.

이탈리아의 가장 큰 오벨리스크는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 있다. 높이 25.37m, 무게 300톤의 이 오벨리스크는 처음엔 네로 황제의 경기장에 세워두었으나 교황 식스투스 5세가 명을 내려 옮겨왔다. 900여 명의 인부와 140여 마리의 말, 그리고 밧줄을 감거나 푸는 기계인 권선기 47대를 동원했다고 하니 그 노동력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로마 제국이 선도한 오벨리스크 약탈 경쟁은 16세기 중엽부터 이집트에 침입한 유럽인들에게 이어졌다. 서구 열강이 빼앗아간 오벨리스크는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 두루 퍼져 있다. 영국 런던 템즈강 연안의 오벨리스크는 1870년 영국인들이 배로 싣고 간 것으로 '클레오파트라의 바늘'이라는 별칭이 있다. 약 3500년 전에 제작된 것이다.

프랑스 파리의 콩코르드 광장에 있는 오벨리스크도 3200년이나 된 국보급인데 공식적으론 이집트 국왕의 선물로 알려졌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직후 가져온 것을 보면 약탈로 추정되고, 이집트 정부가 반환을 요구하기도 했다.

에티오피아 악슘(Axum)의 오벨리스크는 무솔리니 시절 이탈리아가 가져가 콜로세움 맞은편 유엔식량농업기구(FAO) 건물 앞에 세웠다. 1700년의 역사를 가진 이 조형물은 에티오피아가 끈질기게 요구해서 2005년에 반환받았다. 또 '시베리아의 파리'로 불리는 러시아의 이르쿠츠크에도, 터키의 이스탄불에도 오벨리스크가 있다.



■ 오벨리스크는 자국의 권력 과시용

여러 나라가 이집트 유물을 자국의 상징인 양 뽐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스스로 뾰쪽탑을 만들어서 광장에 세웠을까? 먼저, 패권을 차지한 위세를 과시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승리와 영광을 나타내는 태양신의 상징을 광장에 세우고 자국의 우월성을 내세웠다. 다음은 최고 권력의 과시였다. 왕 중의 왕 파라오는 신과 같아서 따라올 권력이 없었다.

또 하나의 기대가 영속성이었다. 로마제국은 지중해세계의 패자였고, 황제는 제국의 제1인자였다. 로마에서는 황제를 신처럼 숭배하였다. 하지만 더 강한 존재가 황제와 제국을 지켜주면 패자의 지위가 영원하지 않을까? 장구한 역사를 가진 이집트의 오벨리스크가 그런 상징이었다.

미국 수도 워싱턴 D.C. 중심에 위치한 오벨리스크는 169m 높이로 하늘을 향해 치솟은 세계 최장의 석조탑이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기리는 이 탑은 오벨리스크를 본뜬 것이다. 백악관과 국회의사당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이 탑은 도시 어디서나 볼 수 있게 이보다 높은 건물을 금지하고 있다. / 충북대 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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