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정문섭 〈논설위원〉

이상득 전 국회의원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구속을 계기로 대선자금이 정가의 핫이슈로 떠올랐다.

역대 대통령들은 대선자금을 어느 정도나 썼을까. 선관위에 신고한 공식 지출금액을 보자.

1987년 민주정의당 노태우 대통령은 130억9천803만원을, 1992년 김영삼 대통령은 284억 4천846만원을 대선자금으로 썼다고 신고했다. 1997년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대통령은 261억7천200만원을, 2002년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대통령은 266억5천140만원을 지출했다고 신고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7년 대선 직후 373억9420만원을 지출했다고 신고했고, 선관위는 이중 348억 원을 선거비용으로 인정해 국고로 보전해줬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2009년 5월 미국 방문 중 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대통령이 완벽하게 합법적으로 선거운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역대 어느 대선보다 돈이 적게 드는 선거운동을 했다"고 자랑했다.

전문가들은 선관위에 신고한 대선 자금은 말 그대로 신고금액일 뿐 실제는 이보다 3배에서 많게는 10배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실제로 노태우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김영삼 후보에게 3천억 원을 지원해줬다"고 적었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은 받은 돈의 1/10도 안 되는 284억여 원을 썼다고 신고했을 뿐이다. 선거를 치르려면 비공식 자금도 많이 들어간다. 사무실에서 마시는 생수부터 각종 긴급 지출 등 공식 자금으로 정산하기 어려운 용처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러니 돈이 없는 정치인들은 기업인들에게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검찰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존재가 된다.

대선자금은 필요악이다. 따라서 비공식 선거비용도 가능하면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이를 공식 선거비용으로 보전해주는 제도적 장치가 아쉽다.

선관위는 이번 18대 대통령을 선출하는 2012년 대선비용을 공식적으로 559억7천700만원으로 산정해 놓았지만 이 돈으로 선거가 가능하다고 믿을 정치인은 거의 없다.

그러다보니 선거 때가 되면 대선 후보 캠프들은 각종 방법을 동원하여 선거자금 모으기에 혈안이 된다.

일부 기업가들은 비자금을 대선후보들에게 보험성격으로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대가성이 없는 돈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선거비용 창구를 일원화하여 선거자금을 합법적으로 모금하고 투명하게 집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박근혜 후보 측은 대선 공식 선거비용 559억7천700만 원 이하로 선거를 충분히 치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선거공영제로 대부분의 선거 비용을 보전 받을 수 있는 만큼 과거 선거 자료를 바탕으로 각종 비용을 추계해 홍보물, 여론조사 등을 발주할 때 최저가 입찰 방식 등을 도입해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방안을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 측은 "대선 후보로 확정되면 당과 협의해 법정선거 비용을 기준으로 560억 원짜리 펀드 조성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해 최근 대중화된 정치인 펀드를 활용할 뜻을 내비쳤다.

선거용 펀드'는 2010년 6·2 지방선거 때 경기지사에 출마한 유시민 통합진보당 전 대표가 처음 시도했다. 박원순 시장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38억 원가량의 선거비용을 펀드로 마련했고, 지난 총선에서는 30여명의 후보자가 1억~2억 원 규모의 선거용 펀드를 조성했다. 15% 이상만 득표하면 대선후보들도 법정선거비용 내 지출을 모두 국고에서 돌려받을 수 있다.

김두관 후보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불법 대선자금의 고리를 완전히 끊고, 대선 자금을 국민 앞에 떳떳하게 공개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정치가 맑아야 나라가 맑아진다. 대선자금이 더욱 투명해질 수 있도록 이제는 국민들도 역량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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