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정문섭 논설위원

"국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드린 점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24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최근 친인척 및 측근비리와 관련하여 "어떤 질책도 달게 받겠으며, 국민 여러분께 저의 솔직한 심정을 밝히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라고 판단해 이 자리에 섰다"고 국민에게 사과를 했다.

이 대통령은 담화문에서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월급을 기부하면서 나름대로 노력해왔는데 바로 제 가까이에서 참으로 실망을 금치 못할 일들이 일어났으니 생각할수록 억장이 무너져 내리고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다"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이 대통령은 그러나 "개탄과 자책만 하고 있기에는 온 나라 안팎 상황이 너무 긴박하고 현안 과제들이 너무나 엄중하고 막중해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책무를 잠시도 소홀히 할 수가 없어 겸허한 마음가짐과 사이후이(死而後已)의 각오로 더욱 성심을 다해 일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언론은 '사이후이'를 '죽은 뒤에야 그만둔다'는 뜻으로 풀이하면서 이 대통령이 살아 있는 동안 끝까지 힘써 일한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는 친절한 주석을 달아주었다.

이 대통령은 임기 중 여섯 번째 대국민 사과를 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문을 시발로 세종시 수정과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등에서도 사과의 뜻을 밝힌 바 있다.

이 대통령의 사과담화문이 발표되던 날 서울 서초동 법원종합청사는 사뭇 삼엄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다름 아닌 김희중(44)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의 피의자 심문을 앞두고 경찰관과 법원 방호원들이 법원청사로 들어가는 출입문을 방패로 봉쇄한 채 민원인과 변호인 등 법원을 오가는 사람들을 일일이 검문한 탓이었다.

이 때문에 삼삼오오 짝을 지어 법원으로 들어가려던 저축은행 피해자들과 이를 막으려는 자들과의 실랑이는 곳곳에서 이어졌다.

힘겹게 청사에 들어온 10여명의 저축은행 피해자들도 김 전 실장에 대한 심문이 열린 법정 근처에는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법원은 기자들의 정당한 취재도 막았다. 보통의 경우 취재진들은 법원의 촬영허가를 얻어 포토라인을 설정하는 등 나름의 규칙에 따라 법정에 출석한 주요 인사들을 취재하고 보도했지만 방호원들은 김 전 실장이 들어오기로 한 출입구 주변을 둘러싼 채 기자들의 접근도 막았다고 한다.

전 현직 국회의원이나 장관 등 고위 인사들의 법원 출석 때도 없었던 일이었다.

이는 지난 10일 법원에 출석하던 이 대통령의 형, 이상득(77) 전 국회의원이 저축은행 피해자들에게 넥타이를 잡히고 계란을 맞는 봉변을 당하자 "어떻게 저런 사람들을 막지 못했냐?"며 질책한 결과였다.

그리고 2주 만에 다시 청와대 인사가 법원에 출석하자 경찰관들과 법원 방호원들은 저축은행 피해자들이 아예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 막아섰다. 구속 수감은 되었다고 하지만 '만사형통(萬事兄通ㆍ모든 것이 형님을 통하면 된다)' '형님'의 입김이 작용한 탓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의 의미를 무색하게 만든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친인척 비리를 차단하려면 대통령 친인척과 측근 비리를 발본색원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새누리당이 대통령 측근비리 예방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법안 마련에 착수했다는 소식이다. 임기 말 대통령들이 주변의 비리 때문에 정치적 곤경에 빠지는 상황이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도록 법적 제도적 장치를 하루 속히 마련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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