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의 무형문화재 이야기<2> 한지장

국산 닥나무로 만든 한지를 찾아보기 어려운 시절입니다.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수익을 앞세우다보니 펄프지를 섞어 한지를 뜨거나 값싼 중국산을 사용하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순수한 전통 한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시절이 어지러울수록 전통을 지키며 국산 한지를 생산하는 장인들의 존재는 더욱 귀하게 여겨집니다. 종이를 제조하는 방법은 한국과 일본, 중국이 다르지 않았습니다. 나무로 만든 발틀과 대나무로 만든 초지용 발을 이용했는데 발 위에 지료를 퍼 올려 종이를 만드는 물질 방법에는 저마다 차이가 있었습니다.

나라마다 제조된 종이의 특성이 다르고 차이가 나는 것도 이 같은 제조방법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충북의 무형문화재 두번째 이야기 주인공은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17호 한지장입니다.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리에서 단구제지를 운영하는 황동훈(72) 기능보유자와 괴산군 연풍면 원풍리에서 신풍한지를 운영하는 안치용(53) 기능보유자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우리나라 한지 제조 방법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물질법인 외발초지와 개량물질법인 쌍발초지 두 가지가 있다. 외발초지는 끈에 매달린 하부발틀 위에 초지용 발을 깔아 지통에서 지료를 퍼 올려 전후좌우로 흘려보내는 방법을 말하는데, 지료를 가두는 상부발틀이 없어 물질방향에 따라 닥섬유가 정렬된다.

쌍발초지는 일본의 화지 초지법처럼 발틀이 천장의 대나무 장대에 매달려 있어 하부 발틀 위에 초지용 발을 깔고 상부발틀을 닫아 지료를 가둔 다음 지통으로부터 지료를 퍼 올려 천장의 대나무 장대 탄력을 이용해 전후로 흔들어 초지하는 방법을 말한다. 외발초지와 달리 상부발틀이 지료를 가두기 때문에 물질은 전후 방향으로만 하고 섬유도 전후방향으로 정렬된다.

일본 화지의 흘림뜨기 초지법도 쌍발초지와 동일한 방법으로 같은 형태의 초지용구를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중국의 수록지 초지법은 가둠뜨기 형태로 우리나라나 일본처럼 섬유의 배향을 유도하는 흘림뜨기 형태의 물질이 생략되기 때문에 섬유의 배향성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닥나무 밭서 건진 '오래된 고집'

■ 한지장 황동훈

▲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리에 위치한 단구제지에서 전통을 잇고 있는 황동훈 한지장.
충북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리에 위치한 단구제지는 1956년 황현식 초대 대표에 의해 처음 문을 연 이후 장남인 황동훈 한지장이 2대 대표를 맡아 운영하고 있다. 1960년대부터 일본으로 해외시장을 개척해 현재도 직거래를 통해 한지를 수출하고 있다.

경북 문경과 예천에서 흑피와 백피를 구매해 원료로 사용하고 있으며 일부는 수입 백닥을 구입하기도 한다. 다만 닥풀(황촉규)만 1천㎡ 재배지에서 직접 재배하고 있다. 단구제지에서는 창호지, 미색전지, 고서용 복사지, 화선지 등의 한지를 쌍발초지법으로 생산하고 있다.

장인은 장인이 알아본다고 했던가. 단구제지에서 생산하는 한지의 우수성은 홍종진 배첩장이 인정한다. 그는 배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종이라며 오랜 기간 단구제지에서 생산한 한지를 고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전통 한지 가운데서도 고급한지는 순수하게 국산 닥으로만 만드는데 홍촉규 즙을 넣어 뜬 종이는 광택이 나고 수명이 오래가 고급한지로 통했다.

단구제지에서 생산하는 한지의 90%는 일본으로 수출된다. 국내 주문생산은 10%에 불과하다. 안타까운 현실은 일본으로 수출된 한지가 염색처리 과정을 거치면서 몇 배나 비싼 값을 받고 다시 국내로 역수출된다는 점이다. 단지 염색과정을 거쳤을 뿐이지만 일본에서 건너온 국산한지 가격은 세배 가까이 값이 오른다. 아는 사람만 속이 답답할 뿐이다.

단구제지에서는 주로 쌍발뜨기를 통해 한지를 생산한다. 외발뜨기 기술을 통해 무형문화재가 됐지만 일본 수출품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단구제지의 한지가 유명한 이유 가운데는 원료와 물이 있다. 옛 단양에 있을 때 보를 막아 용수로를 공장안에 연결해 사용했다면 용부원리로 이사를 오고 나서는 샘물을 사용하고 있다.

용부원리는 단양에서도 알아주는 장수마을이다. 물 좋기로 소문난 이곳에서 전통방식으로 뜨는 한지는 윤기가 나고 질긴 것이 특징이다. 한지를 만드는 과정은 모두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12월에서 이듬해 3월말까지 채취한 닥나무를 삶아 껍질을 벗긴 후 건조시켜 피닥을 만들고 다시 칼로 흑피(표피)를 제거해 백닥을 얻는다. 이것을 다시 메밀대나 콩대를 태워 만든 잿물에 넣고 여섯 시간에서 일곱 시간 정도 장작불을 지펴 삶는다.

▲ 백닥 세척하기
삶은 백닥은 맑은 물에서 3~4일간 헹구고 햇볕에 쬐어 표백을 한 후 먼지와 불순물을 제거하는 데 이것을 티 고르기라고 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 닥 섬유를 두들겨 닥죽을 만든다. 닥나무를 뭉갠 닥죽은 지통에 깨끗한 물과 함께 넣고 닥풀을 풀어 한지를 뜬다. 천년을 유지한다는 한지의 비밀은 닥풀(황촉규)에 있다고 황동훈 한지장은 귀띔했다.

일단 지통에 닥죽과 황촉규 성분이 배합되면 한지를 뜨는 일이 남는데, 초지공은 지통 위에 걸어놓은 발로 앞 물을 떠서 뒤로 흘려버리고 다시 물을 떠서 흘려버리기를 반복하며 한지를 뜬다. 이렇게 발로 건진 종이를 바탕이라고 부른다.

바탕과 바탕은 사이에 실을 넣어 구분해서 쌓아올리는데 어느 정도 작업이 끝나면 한지 위에 널빤지를 얹고 무거운 돌을 올려놓아 물을 뺀다. 물기가 빠졌다 싶으면 압축기를 이용해 물기를 완전히 뺀 후 한 장씩 떼어 열판에 붙여 건조시킨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한지를 두드리는 것으로 이를 도침(다듬기)이라고 하는데 우리 전통한지의 우수성은 수백 번의 두들김에서 완성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도침작업은 종이의 밀도를 높이는데 중요한 과정이다.

한지장 황동훈은 단구제지의 한지가 예술품이라고 했다. 환경과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한지가 붐이라고 하는데 전통을 고집하는 장인에겐 어찌된 일인지 체감이 되지 않는다. 그는 어렵게 지켜내고 있는 전통 한지가 일본에서 보다 국내에서 더욱 사랑받길 희망한다. 그리하여 한국에서 만든 전통 한지가 일본에서 역수출되거나 일본한지 이름으로 미국과 유럽에 수출되는 일은 없어야하지 않겠냐고.

조령산 용천수로 … '웰빙 한지'

■ 한지장 안치용

▲ 물 좋기로 소문난 괴산 연풍에서 전통의 현대화를 꿈꾸고 있는 안치용 한지장.

예로부터 한지공장은 물을 찾아다닌다고 했다. 물이 좋아야 닥나무 질이 좋고 천연염색을 해도 색 선명도가 잘나온다고 했다. 그래서 좋은 한지가 생산되는 곳에는 어김없이 으뜸가는 용천수가 있었다.

물 좋기로 소문난 괴산 연풍에도 국내 대표적 한지 생산지인 전주와 원주, 안동에 버금가는 닥나무 군락지가 있었다. 연풍에서 신풍한지를 운영하는 안치용 한지장은 괴산 한지가 우수한 비결을 조령산 자락의 느티나무 밑에서 솟아나오는 용천수라고 말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그는 질 좋은 한지를 얻기 위해선 좋은 닥나무 묘목을 가꿔야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물이 좋아야 한다며 신풍한지의 으뜸은 천혜의 자연환경이라고 강조했다. 신풍한지에서 한지를 생산하는 안치용 한지장은 3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 한지관련 특허만 10개에 달할 정도로 한지에 쏟는 열정도 남다르다.

그가 한지장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1981년부터. 제천 봉양이 고향인 할아버지의 가업을 이어 아버지에게 일을 배웠다. 누이의 시댁도 한지를 만들어온 집안이기에 양쪽 집안이 2001년 힘을 모아 설립한 영농조합법인이 '신풍한지마을'이었다.

당시만 해도 괴산은 이미 알려진 원주나 전주에 비해 오지로 통했기 때문에 비교적 전통 유지가 잘 되고 있었다. 다른 지역의 한지가 전통을 고수하기보다 기교를 부리는 방향으로 발전할 동안 상대적으로 유명세가 덜 했던 괴산 한지는 옛 방식을 고수하는 것으로 역사성을 잇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경쟁력을 갖출 수는 없었다.

안치용 한지장이 소비자 취양에 맞는 제품 연구에 돌입한 계기도 한지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과정이었다. 컬러와 디자인에 변화를 줬고 새로운 아이템 개발과 종이 질을 향상시키는데 노력한 결과 한지의 우수성과 경쟁력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

신풍한지가 특허출원을 받은 제품은 한지수의와 입체문양한지, 한지유골함, 물방울문양한지, 한지수중염색, 복사기 또는 인쇄기 출력용 한지, 한지지갑 등이다. 그는 한지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했다.

보통 수의는 삼베를 최고로 꼽지만 100% 삼베가 아닌 이상 나일론이 섞여 잘 썩지 않는 문제가 있어 최근에는 한지수의를 찾는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천연곡물코팅은 신풍한지만의 특징 가운데 하나. 유네스코 직지상 상장을 만든 것으로도 유명한 신풍한지는 인쇄가 가능한 한지를 만들기 위해 천연곡물 코팅을 개발해 화제를 모았다.

▲ 닥나무가 다 쪄지면 겉껍질이 속심보다 약간 말려 올라가는데 이것을 '가락지가 섰다'고 말한다.


신풍한지에서 한지를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닥나무는 1년생으로, 매년 10월에서 이듬해 3월 사이 가지를 수확해 사용한다. 이렇게 수확한 닥나무는 솥에 물을 부어 그 위에 올린 후 수증기로 찌는데 보통 여섯 시간에서 일곱 시간이 필요하다. 이렇게 닥나무를 찌고 나면 껍질을 벗겨 냇물에서 하루 정도 불린 다음 다시 겉껍질을 벗기고 백피를 얻는다.

백닥이라고도 불리는 백피는 볕 좋은 곳에 말렸다가 불순물을 제거하고 다시 섬유질을 부드럽게 하는 과정을 거쳐 30㎝ 단위로 자르고 천연 잿물에 넣어 두 시간 정도 삶는다.

흐물흐물해진 백피는 잡티를 골라내고 닥돌 위에서 서너 시간 곤죽이 되도록 두들긴다. 닥죽은 다시 지통에 물과 함께 넣어 200번 정도 저어준 다음 방망이로 두들기는 과정을 반복하고 모든 과정이 끝나면 마지막으로 대로 만든 발을 이용해 물질을 해서 종이를 떠낸다.

떠낸 종이를 판판한 판에 500장정도 쌓은 후 무거운 돌을 올려놓아 물을 빼는데 수분이 빠지면 한 장씩 떼어내어 말리고 종이를 겹쳐 다듬이질을 하는 '도침질' 수순을 밟는다. 여기까지가 백지를 만드는 과정이다.

안치용 한지장은 한지로 연필꽂이를 만들고 황토·소목·치자 염색을 하기도 하고 인형과 부채도 만든다. 공예품에 그치지 않고 수의, 한복, 지갑을 비롯해 전통한지의 우수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전통의 현대화에 힘쓰고 있다. 전통을 지키는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실용성을 높이고 현대화를 위해 노력하는 안치용 한지장. 한지의 경계 허물기에 나선 그의 실험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 김정미

warm@jbnews.com


# 재료에 따른 한지의 분류

▶고정지(藁精紙) : 귀리짚을 원료로 만든 종이
▶상지(桑紙) : 뽕나무 껍질을 원료로 만든 종이
▶등지(藤紙) : 등나무를 원료로 만든 종이
▶송피지(松皮紙) : 소나무의 속껍질을 혼합해 만든 종이
▶태지(苔紙) : 물이끼를 섞어서 만든 종이
▶유엽지(柳葉紙) : 버드나무 잎을 섞어서 만든 종이
▶유목지(柳木紙) : 버드나무를 잘게 부수어 혼합해 만든 종이
▶송엽지(松葉紙) : 솔잎을 잘게 부수어 혼합해 만든 종이
▶의이지(薏苡紙) : 율무의 잎 및 줄기를 섞어서 만든 종이
▶마골지(馬糞紙) : 마의 속대를 잘게 부수어 섞어서 만든 종이
▶황마지(黃麻紙) : 황마를 섞어서 만든 종이
▶태장지(苔壯紙) : 털 같은 해초를 혼합해 만든 종이
▶분백지(粉白紙) : 분을 먹인 흰 종이



*자료협조: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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