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 박상준 논설위원·마케팅국장

로마의 폭군 네로 황제도 올림픽 대표선수였다. 네로는 AD 66년에 열린 올림픽 4륜마차 부문에서 우승한 것을 비롯 수백개의 월계관을 차지했다고 한다. 그는 어떻게 우승할 수 있었을까.

당시 로마의 속국 그리스에 수천명의 보디가드를 거느리고 나타난 네로가 출전하면 아무도 그의 4륜마차를 앞지르지 못했다. 경기 도중 마차에서 떨어져도 다른 선수들이 모두 네로가 다시 탈 때까지 기다리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고 역사는 전한다. 신성한 올림픽 정신은 때로 이런 추악한 역사로 덧칠돼있다.

고대올림픽은 그리스 로마를 중심으로 열렸지만 지금은 전세계 203여개국이 출전하는 스포츠 최대이벤트다. 10억명이상의 시청자들이 올림픽이란 '꿈의 무대'를 지켜보며 환호하거나 깊은 탄식을 토해낸다.

태극전사들이 엮어내는 감동의 드라마를 보다보면 자정을 흘쩍 넘기게 된다. 승리의 짜릿한 감격을 맛보며 편안한 잠자리에 들기도 하지만 때론 아쉬운 패배에 허탈함과 안타까움을 금치못할때도 있다.

하지만 경기를 볼 때마다 태극전사들이 안스러울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이번 올림픽엔 유독 우리선수들이 경기 도중 고통스런 표정을 짓는 경우가 많다. 유도의 조준호 선수는 오른쪽 팔꿈치 인대가 끊어졌고 왕기춘 선수 역시 손목에 골절상을 입고 분루를 삼켰다. 여자핸드볼의 에이스 김온아 선수도 인대가 파열됐다. 선수들이 경기도중 부상때문에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는것은 불편하다. 그나마 사격의 진종호 선수는 '등막동통증증후군'으로 고통을 겪으면서도 이를 극복하고 2관왕에 올랐다.

이때문에 중계방송에서 '부상투혼'이라는 말을 유난히 많이 듣게된다. 스포츠라는 것이 본래 거칠 수 밖에 없다. 고도의 정신력과 체력을 요구하지만 온 몸을 사용하다보니 다치는 것이 예사다. 성적을 떠나 이들이 박수갈채를 받는 것은 성치않은 몸으로 젖먹던 힘까지 경기에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친 선수들의 투혼은 묵직한 감동을 준다.

그러나 스포츠가 늘 감동만 주는것은 아니다. 과도한 상업성때문에 실망할때도 있고 때로 어이없는 심판판정은 분노를 일으킨다. 젊잖은 사람도 욕설이 튀어나올만큼 지나친 경우도 있다. 영국은 일찍 부터 민주적인 법과 제도가 확립된 신사의 나라지만 이번 올림픽은 '올림픽정신'을 운운하기 민망한 만큼 경기운영이 혼탁했다.

무엇보다 태극전사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마린보이 박태환도 당했고 유도의 조준호도 눈물을 떨구었으며 펜싱 여자에페의 신아람 경기때 1초를 고무줄처럼 늘어트린 오심으로 역대 최악의 오심 '베스트 5'에 들기도 했다. 반면 미국은 복싱에서 패하자 강력히 항의해 5시간만에 경기를 뒤집기도 했다.

물론 런던올림픽조직위원회의 잘못은 아니다. 심판의 실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올림픽 가맹단체의 실력자와 심판진들의 농간에 의해 억울한 일이 발생한다는 의혹을 지울수 없다. 그 저변에는 올림픽을 통해 국력확장에 올인하려는 각국의 메달경쟁이 숨어있다. 여기에 '심판의 오심도 경기의 연장'이라는 말은 순진한 말로 들린다.

"올림픽의 의의는 승리보다 참가하는데 있으며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는 노력이다"라는 올림픽 헌장은 지당한 얘기지만 가끔 선수를 배신하기도 한다. 페어플레이는 선수들만 하는 것이 아니다. 스포츠에 경기외적인 '힘의 논리'가 개입되고 가맹경기단체와 심판진이 승부를 조작하려 한다면 페이플레이는 완성될 수 없다.

누가 네로황제의 월계관을 비난할 수 있을까. 올림픽은 이미 상업화됐고 정치화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철학자 에리히 프럼은 "올림픽의 특징을 이루는 요소는 장사속과 선전의 더러운 야합이라는 사실을 축제의 관객만 모르는척 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스포츠외교도 힘이 있어야 통한다. 올림픽에서 피땀을 흘린만큼 댓가를 받으려면 실력은 기본이지만 때론 '국력'도 뒷받침돼야 한다. 그래야 승리를 지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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