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우 교수의 문화선진국에서 배우다 <9> 뉴질랜드의 자연유산과 환경

유럽인이 오기 전 뉴질랜드에는 울창한 원시림이 가득했다. 오클랜드 박물관에 길이 25m에 폭이 1.5미터인 전투용 카누가 전시되어 있다. 카우리 나무 한 그루를 베어서 만든 카누였다. 이런 나무로 이루어진 숲들이 한 세기만에 모두 사라지고 겨우 4%만 남았다.

■ 청정지역 뉴질랜드의 빛과 그림자

비행기에서 보는 뉴질랜드는 황홀하다. 드넓은 초지 위에 풀을 뜯는 양과 소떼가 고물거리고, 푸른 빛 숲과 풀밭이 펼쳐진 섬은 그대로 지상낙원이다. 아름다운 해안에는 하얀 백사장과 파란 바닷물이 어우러져 있다.

따뜻한 날씨 때문에 각종 꽃이 철없이 피어난다. 수량이 풍부한 강바닥에는 장어가 늠실대고, 커다란 호수에는 꼬리를 물며 송어가 헤엄친다. 오염이 거의 없으니 청정바다에서 나는 해산물 파이의 맛이 그만이다.

▲ 역설의 현장인 목장. 유럽인이 오자 전국 3분의 2를 덮었던 원시림이 100년만에 사라지고 이런 목장으로 변했다.



뉴질랜드에는 사람이 적다. 한국의 2배반이 넘는 면적에 약 427만 명이 산다. 모든 것이 널널한 분위기이다. 지금도 열풍이 식지 않았지만 한 동안 뉴질랜드는 최고의 여행지였다. 목장과 호수와 해변에서 신나는 야외활동이 펼쳐진다. 주말에 요트를 타고 바다에서 지내는 삶은 부럽기만 하다.

그러나 최고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뉴질랜드는 지구의 역사에서 최근에 가장 심하게 자연이 훼손된 현장이기도 하다. 역설도 이런 역설이 없다. 시원하게 펼쳐진 목장이 왜 안타까운 땅의 징표가 되었는가?

■ 800년전 사람이 살기 시작한 뉴질랜드

뉴질랜드는 14세기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살지 않았다. 첫 정착민은 동부 폴리네시아에서 온 마오리족이었다. 방사성 탄소측정과 DNA 검사에 의하면 그 시기가 1250년에서 1300년 사이였다. 한국사에서 보면 고려후기까지 무인도였다는 말이다.

이 큰 섬이 무인도였다니? 호주와는 1천500km, 뉴칼레도니아 섬과는 거의 1천km나 떨어져서 카누로 갈만한 거리가 아니었다. 너무 먼 바다 저쪽이었다. 그래서 화산으로 생겨난 남섬 북섬과 작은 섬들에는 8천만년 동안 동식물만 살며 독특하게 진화하였다.

▲ 아름다운 자연을 보여주는 숲 속의 폭포. 사진작가 Gail Mooney Kelly 작품.



뉴질랜드는 겨울에 비가 많이 오는 온화한 해양성 기후이다. 구멍이 숭숭 뚫린 화산암에 뿌리가 깊게 파고들어 섬의 3분의 2가 커다란 원시림으로 덮였다. 마오리족은 아직 석기단계라 숲에 의지해서 살았다. 이들은 이 신천지를 아오테아로아, 즉 '길고 하얀 구름의 나라'라고 불렀다.

마오리족이 350년 간 살아온 뒤 갑자기 이 땅에 유럽인들이 몰려들었다. 이들이 자원의 보고인 이 섬을 그냥 둘리 없었다. 우선 숲에서 대량으로 목재를 가져갔다. 다음엔 포경선이 들이닥쳐 고래를 잡아갔다. 고래 기름이 원료인 양초산업 때문이었다. 석유 개발로 고래 기름 값이 떨어질 때까지 뉴질랜드는 주요 포경기지였다.

영국 정착민 사회는 갈수록 커졌다. 1815년 처음 아이가 태어났고 그 수가 많아졌다. 용감한 마오리족은 땅을 둘러싸고 정착민들과 치열하게 싸웠다. 쌍방 희생이 적지 않았다. 그러자 영국은 식민지 역사에서 유일하게 타협을 모색했다. 그것이 1840년의 와이탕기조약이다. 마오리족은 영국 여왕의 통치권을 인정하고 토지에 관한 일정한 권리를 갖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땅은 점차 영국인에게 넘어갔다.

■ 한 세기만에 사라진 울창한 원시림

19세기 후반 세계를 지배하던 영국은 선박제조에 필요한 양질의 목재가 필요했다. 그러한 목재는 뉴질랜드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다. 어디나 숲이 넘쳐나서 아무리 베어내도 아깝지 않았다.

주요 산지에 설치된 제재소와 조선소가 엄청난 숲을 먹어치웠다. 호주 시드니와 유럽 항구에는 싼 재목이 밀려들었다. 카우리 나무는 옹이가 전혀 없는 최고 품질이라 범선의 선실용뿐 아니라 돛대나 버팀대에도 적합했다.

마오리족에게 넘겨받은 땅에는 소와 양을 키웠다. 그러기 위해 나무를 잘라내고 풀씨를 뿌렸다. 그러자 광대한 숲들이 사라지면서 넓고 푸른 초지가 곳곳에 생겨났다. 마침내 뉴질랜드는 한 세기만에 모습이 달라졌고, 거대한 숲은 겨우 4% 정도의 흔적만 남았다.

▲ 널리 알려진 1800년대 카우리나무 벌목 모습.



북섬 노슬랜드의 와이포우아 일대에는 마오리족이 지켜낸 숲이 있다. 여기에는 카우리 나무를 비롯해 토타라, 리무, 리모, 마타이 등 고유종이 울창하다. 코로만델 반도에는 카우리와 함께 꿀로 유명한 마누카 숲이 있고, 타우포 호수 인근에도 보호림들이 있다.

와이포우아 숲의 가장 큰 나무는 1천500살인 '타네 마후타(Tane Mahuta)'이다. 높이 51.2m, 둘레 17.68m인 이 카우리 나무는 지금도 성장하고 있다. 두 번째 큰 나무는 2천살 이상으로 측정된 '테 마투아 능가헤레'이다.

■ 환경·조림정책은 우리가 본받아야

오늘날 카우리 원시림을 잃은 뉴질랜드 사람들은 자연보호와 환경운동에 뒤늦게 열심이다. 자기 집 울타리 안의 나무도 허가를 받아야 베어낸다. 로토루아에서는 인분을 퇴비로 만들어 산지에 뿌린다. 숲의 재생을 오염 처리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 남은 카우리 숲의 보존과 조림산업에 성공하였다. 국토를 보면 43%가 농경지와 목장, 천연림 지역이 24%이고 인공조림지가 약 7%이다. 적지 않은 조림지에 라디아타 소나무를 심는다. 화산섬이라 생장속도가 3배나 빨라 30년이면 벌채할 수 있고, 그 목재는 한국을 비롯해 중국 호주 일본으로 팔려나간다.

로토루아 조림지에 가면 레드우드 숲에서 가지 치는 소리가 들린다. 아무도 없는 숲에서 기이한 소리가 나는 것처럼 들리는데 기계손으로 위에서 밑둥까지 훑어내려 잔가지를 제거하는 것이다. 곧고 옹이 없는 재목은 그렇게 길러진다. 1947년에 설립된 로토루아 삼림연구소에서 모든 연구를 이끌고 있다.

▲ 와이포우아 숲의 최대 카우리 나무로 '타네 마후타(Tane Mahuta)'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사람이 작은 새처럼 보인다. / 뉴질랜드 관광청 제공


■ 숲은 선진국과 경제 강국의 상징

현재는 물론 미래의 인류 과제가 환경이다. 사람은 자연 파괴로 이상기후라는 징벌을 받는 중이다. 환경 파괴의 최대 원인은 농경이었다. 유사 이래 전 세계에서 농경지 확보를 위해 대거 숲을 없애왔다. 도시와 도로 확장도 숲을 줄여나가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리비아의 사하라사막은 열대우림이었다. 지하에 많은 석유와 물이 저장되어 있다. 메소포타미아가 문명의 발원지가 되고 문화국가의 요람이 된 것은 좋은 자연환경 때문이었다. 돈황 일대에도 숲이 있었기 때문에 석굴 안에 문화유산을 쌓아둘 수 있었다.

유럽 선진국에는 검은 숲이 많다. 일부 남은 숲을 보존하고 조림해서 보호했다. 미국 동부의 고속도로는 숲 속으로 뻗어있고, 일본은 전국 산지를 삼나무 밭으로 조성했다. 한국의 산은 검푸르지만 쓸 만한 재목이 드물다. 장기투자와 세밀한 관심이 필요하다.

세계의 역사유적지를 보면 생각되는 점이 많다. 환경을 우선하지 않으면 옥토였던 땅이 변해 사막이 되기 일쑤이다. 미래 과제인 환경은 오늘날에도 핵심 정책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 충북대 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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