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20세기를 말하다 <62> 1970년대 미국 <5> '밀크' (구스 반 산트, 2008)

동성애는 2차 대전 후 미국에서 중요한 사회·정치적 이슈로 자리 잡았다. 1950년 LA에서 퇴역군인 중심의 첫 동성애 모임 'Mattachine Society'가 결성됐으며, 1960년대 중반 이후에는 흑인 공민권 운동과 함께 소수자 보호 차원에서 정치적 이슈로 급부상했다.

하비 버나드 밀크는 5천명이 뉴욕에서 제1회 동성애 퍼레이드를 벌인 1970년 이후 점차 확장되고 강력해진 동성애자 권리회복 운동의 중심에 선 인물이었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의 2008년 작품 '밀크'는 미국 최초의 게이 정치인이었던 그가 1978년 11월 27일 댄 화이트 전 시의원에 의해 죽음을 맞기까지 헌신적으로 펼쳤던 활동을 그린다.

서른아홉 살의 마지막 밤, 하비 밀크(숀 펜)는 뉴욕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사회악에 일조하는 대기업 하수인' 보험회사 직원으로 맞는 마흔 살은 결코 자랑스럽지 않다.

그 날 지하철에서 만난 파트너 스콧(제임스 프랑코)과 새롭게 정착한 곳은 '누구든 일탈을 꿈꾸고 사랑에 빠지는 곳', 샌프란시스코. 실업급여로 살아가던 두 사람은 1972년 유레카 밸리의 아일랜드계 가톨릭 지구 카스트로에서 카메라 가게를 연다.

시작은 '먹고 살 정도 되는 소박한 가게' 정도였다. 하지만 인권운동가, 집 떠나온 청년들로 북적이는 하비의 카메라 가게로부터 카스트로 전역은 게이들의 명소, '우리 구역''우리 터전'이 됐다.

이들을 경원시하던 주변 상인들이 호의적으로 되고 정치적 힘을 규합하기 원하는 이성애자들의 발걸음도 잦아지게 되면서 이들은 점차 '혐오집단'에서 '권력집단'으로 변해간다. 그리고 하비는 좀 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꿈을 꾼다.

구스 반 산트의 전기 영화 '밀크'는 잔잔한 음악이 깔리는 가운데 느린 화면으로 펼쳐지는 흑백 다큐멘터리로 시작된다. 얼굴을 손으로 가린 남자들이 마이애미의 술집, 뉴욕의 바에서 줄줄이 빠져나온다.

경찰봉을 든 경찰들에게 구타를 당하거나 수갑이 채워진 채 경찰차에 오르는 남자들의 모습은 깔끔하게 차려입은 정장과 그저 평범할 뿐인 외양 때문에 더욱 기이해 보인다.

여기에 중간 중간 삽입되는 '경찰 가혹 행위 물의''경찰 게이바 단속 시작' 제목을 단 신문들은 1960년대 동성애자들에게 가해졌던 공권력의 일상적인 탄압을 요약한다.

늘 웃는 얼굴인 하비가 서른아홉 살이 되도록 숨죽여 살아왔던 이유, 샌프란시스코 시의원에 출마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따라서 분명했다. 1953년 아이젠하워에 의해 펼쳐진 동성애 추방 캠페인 이래 공직뿐만 아니라 사기업에서도 동성애자임이 드러나는 건 곧 생존에 가해질 치명적 위협을 뜻했다.

동성애가 심리적 질환이나 질병이 아님을 미국 심리학협회가 인정한 1973년에도 동성애자들은 호신용 호루라기를 들고 다녀야했고 어디선가 비명소리가 들리면 도와주러 달려가야 했다.



"여기서부터 시작하자. 세력을 키워가자." 거리를 걸었다는 이유만으로 구타당하고 체포당하는 현실, 어쩔 수 없이 가족과 친구, 고향을 등지고 살아야 하는 동성애자들의 슬픔에 맞선 하비의 실험은 그러나 결코 쉽지 않다.

끔찍한 그림과 저주가 적힌 경고장이야 각오한 바 있지만 일부 동성애자들마저 '부르주아 놀이'라는 비웃음과 함께 외면한다. 이성애자들 사이에서 나름의 입지를 확보한 동성애자 변호사, 기업인 등도 "하루아침에 변할 순 없다"며 자중하기를 요구한다.

하지만 하비는 주춤거리지도 멈추지도 않는다. "다시 벽장으로 들어가란 말인가요? 충분히 숨어 지냈어요." 결국 3번의 도전 끝에 1977년 샌프란시스코 시의원 선거에서 승리한 하비는 동성애자의 고용과 주거의 차별 금지 규정 철폐 캠페인을 이끄는 가수 아니타 브라이언트, 동성애자 교사 강제 해고 법안을 발의한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 브릭스(데니스 오헤어)와의 치열한 싸움을 통해 게이 인권운동의 지도자이자 상징으로 부상한다.



그리고 하비 밀크가 모스코니 시장(빅토르 가버)과 함께 댄 화이트(조쉬 브로린)의 총에 쓰러진 지 31년만인 2009년 캘리포니아 주의회는 그의 생일인 5월 22일을 '하비 밀크 데이'로 지정하고 공립학교에서 그의 삶을 기념하도록 권고하는 내용의 법안을 의결했다.

같은 해, 성적 소수자의 인권 향상에 기여한 공로로 하비 밀크에게 미국 최고 훈장인 대통령 자유메달을 추서한 오바마 대통령은 2012년 5월 9일 '동성결혼 지지'를 표명했다. 지난 1996년 27%였던 미국인 동성혼 찬성 비율도 2012년 53%로 증가했다.

하비 밀크는 '미국의 거대한 편견'을 무너뜨린 대가로 '불안하고 겁에 질리고 뒤틀린 사람들의 표적'이라는 운명을 묵묵히 감내했다. 영화 '밀크'는 두려움 없는 확신으로 거대한 변화를 이끌어낸 영웅의 얼굴을 그리면서 또한 '일상'과 '실존'으로부터 출발, '정치'로 확장되는 사회적 실천에 관한 하나의 전범을 제시한다.

그 점에서 동성결혼지지가 승부를 가를 이슈로까지 부상한 미국 대선 정국은 "내 머리에 박힌 총알로 닫힌 벽장문을 부수어 달라"는 그의 당부에 대한 2012년의 응답이라고 할 것이다.

/ 박인영·영화 칼럼니스트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지원으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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